정치적 불확실성·원화 약세가 외국인 매도세 자극, 암호화폐·해외자산으로 ‘머니무브’ 가속화
지난 12월 3일 선포된 비상계엄령이 2시간 만에 종료됐음에도,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시장에서 1조 원 이상을 순매도하며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치적 불확실성과 원화 약세가 투자 매력을 약화시켜 자금 유출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외국인, 금융주 중심으로 1조 원 이상 순매도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비상계엄 사태 이후 3거래일 동안 약 1조100억 원 규모의 주식을 순매도했다. 특히 KB금융, 신한지주, 하나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등 주요 금융주에서 7098억 원어치를 팔아치웠다. KB금융과 신한지주는 각각 -15.7%, -9.0%의 주가 하락을 기록하며 큰 낙폭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윤석열 정부의 밸류업 정책에 대한 기대감으로 금융주를 매수했던 외국인 투자자들이 비상계엄 사태 이후 불안감을 느껴 빠르게 투자 비중을 축소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도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정치적 불확실성과 정책 불안정성이 외국인 매도세를 더욱 부추겼다”고 설명했다.
환율 상승, 배당 매력 감소… 자금 이탈 가속
원·달러 환율 상승도 외국인 투자 이탈의 주요 요인으로 지목된다. 환율 상승으로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금융주의 연말 배당 매력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6일 기준 코스피 시가총액은 약 1988조 원으로 집계돼, 지난해 말 대만 증시에 역전당한 이후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외국인 투자자 이탈과 금융시장 불안을 완화하기 위해 시장 안정 조치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9일 거시경제·금융현안간담회에서 “증시안정펀드 등 시장안정조치를 즉시 가동할 준비가 돼 있다”며 밸류업 펀드 투입과 추가 자금 집행 계획을 밝혔다.
‘머니무브’ 현상 지속… 암호화폐·외화로 자산 이동
정치적 불확실성과 금융시장 불안 속에서 자산이 정기예금에서 암호화폐와 해외 주식, 달러화로 이동하는 ‘머니무브’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가상자산 시장은 비상계엄 사태 초기 30% 넘게 가격이 급락했으나, 하루 만에 대부분의 하락분을 회복했다. 대표적으로 비트코인은 계엄령 직후 8800만 원대까지 하락했으나 현재 1억 3000만 원대로 다시 상승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상자산 시장의 급변은 일시적인 발작 반응으로 보인다”면서도 “기준금리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상황에서 예금의 매력은 감소하고, 미국 주식이나 달러화로의 자산 이동이 활발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 시장 안정 위해 총력 대응
정부는 국고채 긴급 바이백, 외화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등 채권시장 및 외화자금시장의 유동성 공급 조치를 시행할 예정이다. 외환 유입 촉진을 위한 구조적 개선책도 이달 중 발표할 계획이다. 또한, 국제 신용평가사 및 해외 투자자들과의 소통을 강화해 한국 시장 신뢰 회복에 나설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정치적 불확실성이 장기화할 경우 외국인 투자 이탈이 이어질 가능성을 경고하며, 금융주와 제조업 분야의 투자 매력 약화, 환율 불안으로 인해 주식시장 전반의 약세가 지속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경제 신뢰 회복과 정치적 안정이 한국 금융시장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