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Q4 2025 13F 공시가 쏟아져 나왔다. 인텔리뷰 리서치팀은 운용자산 합계 $21.4조(약 2경 8,000조원)에 달하는 35개 슈퍼펀드의 포트폴리오 변동을 일일이 크로스 분석했다. 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 스탠리 드러켄밀러의 듀케인 패밀리 오피스, 타이거 글로벌, D.E. 쇼, 시타델, 밀레니엄 매니지먼트 등 전략도 규모도 완전히 다른 펀드들이 같은 분기에 같은 종목에 돈을 넣었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시그널이다.
13F는 분기 종료 후 45일 내에 제출되므로, 이번 데이터는 2025년 10월~12월 사이의 매매를 반영한다. 시장이 AI 랠리의 2차 파도를 타던 시기, 구루들은 무엇을 담았고, 무엇을 버렸는가.
아마존 -- 월가가 '가장 싼 AI 주식'이라 부르는 이유
Q4 2025 13F에서 가장 압도적인 크로스펀드 컨센서스를 기록한 종목은 아마존(AMZN)이었다. 타이거 글로벌은 한 분기 만에 $28억 어치를 추가 매수했고, 퀀트 헤지펀드의 대명사 D.E. 쇼는 아마존 포지션을 30% 증가시켜 총 보유 가치가 $22억에 달했다. 드러켄밀러는 더 공격적이었다. 듀케인 패밀리 오피스의 아마존 포지션은 전 분기 대비 92% 급증했다.
Hazeltree가 집계하는 크라우드니스 스코어(Crowdedness Score)에서 아마존은 99점을 기록했다. 이 지표는 주요 헤지펀드들의 보유 집중도를 100점 만점으로 수치화한 것으로, 99점은 사실상 "모든 기관이 들고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루들이 계속 추가 매수한다는 것은, 현재 가격이 여전히 싸다고 판단한다는 의미다.
월가가 아마존을 '가장 저평가된 AI 주식'으로 분류하는 근거는 AWS의 AI 인프라에 있다. Amazon Bedrock(파운데이션 모델 API), SageMaker(ML 학습 플랫폼), 그리고 자체 설계 AI 칩 Trainium은 엔비디아 GPU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면서 마진을 끌어올리고 있다. Forward P/E 기준으로 아마존은 마이크로소프트보다 15%, 엔비디아보다 22% 낮은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AI 수혜의 범위가 가장 넓으면서, 밸류에이션은 가장 합리적인 종목이라는 평가가 월가의 주류 시각이다.
하지만 모든 구루가 같은 생각은 아니다. 워런 버핏은 이번 분기 아마존 포지션을 75% 이상 축소했다. 버핏은 과거에도 기술주를 일정 수준 이상 보유하지 않는 성향을 보여왔지만, 이번 대폭 축소는 밸류에이션에 대한 경계심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35개 펀드 중 33개가 보유하고 있고, 그 중 22개가 추가 매수한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쿠팡 -- 드러켄밀러가 7번째로 비중을 늘린 한국 기업
스탠리 드러켄밀러와 쿠팡(CPNG)의 인연은 20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쿠팡의 뉴욕증시 상장 직후 첫 매수를 시작한 드러켄밀러는 지난 5년 동안 총 16번의 거래를 기록했다. Q4 2025에도 그 패턴은 이어졌다. 듀케인은 쿠팡 포지션을 46.2% 증가시키며 214만 주를 추가 매수했다. Q3에 12.9% 늘린 데 이어 두 분기 연속 대규모 추가 매수다.
드러켄밀러의 쿠팡 평균 매입가는 $34.69로 추정된다. Q4 2025 기준 쿠팡 주가가 이 평균 매입가 대비 아직 -45% 구간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드러켄밀러가 손실 구간에서도 지속적으로 물량을 늘려왔다는 뜻이다. 그는 이 종목을 트레이딩 포지션이 아닌 전략적 확신 투자로 접근하고 있다.
드러켄밀러만의 베팅이 아니다. Q4 2025 기준 쿠팡을 보유한 기관 투자자는 62개 헤지펀드에 달한다. 한국 이커머스 시장에서의 압도적 지배력, 로켓배송 인프라의 규모의 경제 실현, 그리고 대만과 동남아시아로의 공격적 확장이 기관들의 매수 근거다. 쿠팡은 한국 온라인 쇼핑 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하면서, 대만에서는 출시 2년 만에 현지 물류 네트워크를 완성 단계에 진입시켰다.
월가의 시선에서 쿠팡은 "한국판 아마존"이라는 단순한 비유를 넘어, 아시아 이머징 마켓에서 유일하게 미국 수준의 풀필먼트 인프라를 가진 플랫폼으로 평가받고 있다. 드러켄밀러가 7번째로 비중을 늘렸다는 사실 자체가 가장 강력한 시그널이다.
서비스나우 -- 매도한 펀드가 단 하나도 없다
35개 추적 펀드 중 서비스나우(NOW)를 보유한 16개 펀드의 Q4 매매 내역을 분석한 결과, 가장 특이한 패턴이 나타났다. 11개 펀드가 매수했고, 매도한 펀드는 단 하나도 없었다. 나머지 5개 펀드는 포지션을 그대로 유지했다. 이번 분기 분석 대상 전 종목 중 가장 강한 일방적 컨센서스다.
서비스나우는 엔터프라이즈 IT 워크플로우 자동화 시장의 지배적 사업자다. 기업들이 IT 서비스 관리, 인사, 고객 서비스, 보안 운영 등의 프로세스를 자동화할 때 가장 먼저 도입하는 플랫폼이 서비스나우다. 여기에 AI가 결합되면서 성장 스토리가 한 단계 진화했다. 서비스나우의 Now Assist(생성형 AI 기능)는 기존 워크플로우에 자연어 처리와 예측 분석을 접목시켜, 기업 고객당 매출(ARPU)을 구조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섹터에서 "전원 일치"로 매수가 이뤄진 종목은 서비스나우가 유일하다. 세일즈포스, 워크데이, 팔란티어 등 동종 업체들은 매수와 매도가 혼재되어 있었다. 전략이 다른 펀드들이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이 종목의 펀더멘털에 대해 시장 참여자들의 확신이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다.
엔비디아 -- 여전히 왕좌, 하지만 분위기가 달라졌다
엔비디아(NVDA)는 여전히 기관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보유한 AI 주식이다. 35개 추적 펀드 중 21개가 엔비디아를 포트폴리오에 담고 있으며, 그 중 16개가 Q4에 추가 매수했다. 기관 보유 가치는 $2,245억(약 300조원)에 달한다. Blackwell 아키텍처 기반 차세대 GPU의 양산 사이클이 2025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되면서, 데이터센터 매출의 또 한 번의 점프가 예고되어 있다.
하지만 숫자 이면의 분위기는 달라졌다. 타이거 글로벌은 포트폴리오 내 AI 관련 종목 비중을 의미 있게 축소했고, 드러켄밀러도 AI 섹터 비중을 9.4%까지 줄였다. 두 펀드 모두 엔비디아 자체를 매도하지는 않았지만, AI 랠리 전반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있다는 신호다.
여기서 개인 투자자가 놓치기 쉬운 뉘앙스가 있다. "사는 것"과 "더 사는 것"은 다르다. 이미 대규모로 보유하고 있는 상태에서 소폭 추가하는 것과, 신규로 대규모 포지션을 구축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는다. 엔비디아의 경우 대부분의 펀드가 기존 포지션을 유지하거나 소폭 추가한 수준이었지, 아마존처럼 공격적인 신규 매수세가 몰린 것은 아니었다. 왕좌는 유지하되, 왕관의 무게가 달라진 셈이다.
옥시덴탈 -- 버핏과 드러켄밀러가 동시에 베팅한 에너지
테크와 AI에 쏠린 시장의 관심 바깥에서, 두 명의 전설적 투자자가 조용히 같은 곳에 돈을 넣었다. 워런 버핏은 옥시덴탈 페트롤리엄(OXY) 발행주식의 26.9%를 보유하고 있으며, 여기에 추가 매수 권리를 부여하는 워런트까지 확보한 상태다. 사실상 옥시덴탈의 최대 주주이자, 필요시 지분을 50% 이상으로 확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드러켄밀러는 Q4 2025에 옥시덴탈을 신규 편입했다. 매크로 트레이더로서 지정학적 리스크와 원자재 가격 변동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드러켄밀러가, 이란을 둘러싼 중동 긴장과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불안정성이 심화되는 시점에 에너지 섹터에 발을 들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두 투자자의 접근법은 다르지만, 결론은 같다. 버핏에게 옥시덴탈은 장기적 에너지 수요와 배당 수익의 조합이고, 드러켄밀러에게는 인플레이션 헤지이자 지정학적 헤지다. 성격이 전혀 다른 두 구루가 같은 종목에 같은 분기에 베팅했다는 사실은, 에너지 섹터가 단순한 경기 사이클 플레이를 넘어 구조적 재평가 국면에 진입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반대로, 구루들이 버린 종목 3개
크로스펀드 컨센서스는 매수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구루들이 동시에 빠져나가는 종목에는 그에 상응하는 이유가 있다.
메타 플랫폼스(META) -- 드러켄밀러는 Q4에 메타 포지션을 전량 매도했다. 버핏은 애초에 메타를 보유한 적이 없다. 메타버스 피벗 실패 이후 AI 투자로 선회한 메타의 전략에 대해, 최소한 이 두 구루는 확신을 갖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메타의 AI 관련 자본 지출이 2025년에만 $350억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그 투자 대비 수익(ROI)에 대한 회의론이 스마트 머니 사이에서 퍼지고 있다.
애플(AAPL) -- 가장 주목할 매도는 버핏이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애플 보유량을 7.89억 주에서 3억 주로 줄였다. 무려 62% 축소다. 한때 포트폴리오의 50% 이상을 차지했던 애플의 비중은 22.6%까지 하락했다. 버핏은 공개 석상에서 "애플은 여전히 훌륭한 기업"이라고 말했지만, 행동은 정반대를 가리키고 있다. AI 시대에 아이폰의 혁신 사이클이 둔화될 것이라는 우려, 그리고 단순한 포트폴리오 리밸런싱 차원의 해석이 공존하고 있다.
씨티그룹(C) -- 드러켄밀러는 씨티그룹 포지션을 전량 청산했고, 버핏도 보유량을 70% 축소했다. 씨티그룹의 구조조정 지연과 수익성 개선 속도에 대한 실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두 구루 모두 금융 섹터 자체를 비관하는 것은 아니지만(버핏은 뱅크 오브 아메리카를 대규모로 유지하고 있다), 씨티그룹이라는 특정 베팅에서는 확신을 잃은 것이 분명하다.
핵심 시사점 -- 개인 투자자가 가져갈 것
개별 구루 한 명의 매매를 추종하는 것은 위험하다. 버핏이 샀다고 따라 사면, 드러켄밀러가 파는 종목에 물릴 수 있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전략이 다른 다수의 구루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때, 그 시그널의 신뢰도는 급격히 올라간다. 이것이 크로스펀드 컨센서스의 핵심이다.
물론 13F 데이터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분기 종료 후 최대 45일이 지나서야 공개되므로, 공시 시점에 구루가 이미 포지션을 변경했을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 또한 13F는 미국 상장 주식의 롱 포지션만 공개하며, 숏 포지션, 옵션 전략, 해외 주식, 채권, 원자재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헤지펀드의 진짜 전체 그림은 13F만으로 알 수 없다.
그럼에도 13F는 현존하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기관 투자자 공개 데이터다. 핵심은 사용법에 있다. 구루가 사는 종목을 맹목적으로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왜 사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아마존의 경우 AI 인프라 밸류에이션 갭이, 쿠팡의 경우 아시아 이커머스 확장 스토리가, 서비스나우의 경우 엔터프라이즈 AI 자동화 수혜가 매수의 근거였다.
구루가 사는 종목을 따라 사지 마라. 구루들이 왜 사는지를 이해하라. 그 '왜'가 당신의 투자 논리와 일치할 때, 비로소 크로스펀드 컨센서스는 당신의 무기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