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의 버킷샵 소년
1891년, 보스턴의 14세 소년이 5달러를 들고 불법 도박장 "버킷샵"에 들어갔다. 칠판의 숫자에서 패턴을 읽어낸 그는 16세에 1만 달러를 모았고, 모든 버킷샵에서 쫓겨났다. 뉴욕에서 전 재산을 잃고 다시 올라와, 1907년 패닉에서 300만 달러를 만들어 월스트리트의 가장 유명한 투기꾼이 됐다. 20세기 가장 위대하고 가장 비극적인 트레이더, 제시 리버모어 4부작의 시작.

14세의 버킷샵 소년
1891년,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14세 소년이 버킷샵이라 불리는 불법 도박장에 들어갔다. 소년의 주머니에는 5달러가 있었다. 그리고 소년의 머릿속에는 칠판에 적힌 숫자들의 패턴이 있었다. 이것은 제시 리버모어가 20세기 가장 위대하고 가장 비극적인 투기꾼이 된 이야기의 시작이다.
1. 농장을 떠난 소년
제시 로리스턴 리버모어(Jesse Lauriston Livermore)는 1877년 7월 26일 매사추세츠주 슈루즈버리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농부였다. 가족은 가난했고, 아버지는 제시가 학교를 그만두고 농장에서 일하기를 원했다.
제시는 학교를 좋아했다. 특히 수학을. 그의 수학 교사가 훗날 회고한 바에 따르면, 제시는 3년 치 수학 교과 과정을 1년 만에 끝냈다. 숫자를 보는 속도와 패턴을 인식하는 능력이 비범했다.
14세가 되던 1891년, 아버지가 학교를 그만두라고 했다. 제시는 대신 집을 나갔다. 어머니가 몰래 쥐어준 돈이 5달러. 그는 보스턴행 기차를 탔다.
보스턴에 도착한 소년은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그가 찾은 곳은 페인 웨버(Paine Webber)라는 증권사였다. 정확히는 증권사가 아니라 증권사의 시세판 앞이었다.
당시 증권사 사무실에는 커다란 칠판이 있었다. 그 칠판에 전신(telegraph)으로 전해오는 주가가 실시간으로 적혔다. 보드 보이(board boy)라는 직책이 있었다. 전신으로 들어오는 주가를 받아서 칠판에 분필로 적는 일. 린치가 캐디였듯이, 리버모어는 보드 보이였다.
급여는 주 6달러. 많지 않았지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숫자였다.
2. 칠판의 패턴
제시는 매일 수백 개의 주가를 칠판에 적었다. 오전 10시 시장 개장부터 오후 3시 폐장까지. 주가가 올라가면 적고, 내려가면 지우고, 다시 적었다.
그런데 몇 주가 지나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제시는 숫자를 적으면서 패턴을 보기 시작했다. 어떤 주식은 특정 가격에 도달하면 반드시 떨어졌다. 어떤 주식은 거래량이 급증하면 다음 날 올랐다. 어떤 주식은 월요일에 오르고 금요일에 떨어지는 패턴을 반복했다.
그는 노트 한 권을 샀다. 매일 퇴근 후 그날의 주가를 노트에 옮겨 적었다. 종목별로, 날짜별로. 그리고 패턴을 표시했다. 몇 달 뒤, 그는 자기가 발견한 패턴으로 주가 움직임을 예측하기 시작했다. 정확도가 높았다.
그는 14세에, 100년 뒤 월스트리트에서 기술적 분석(Technical Analysis)이라 불릴 방법론의 원형을 혼자서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 패턴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버킷샵(Bucket Shop).
3. 버킷샵
버킷샵은 1890년대 미국 전역에 퍼져 있던 불법 주식 도박장이었다. 정식 증권거래소에서 주식을 사고팔려면 증권사를 통해야 했고, 최소 거래 금액도 컸다. 14세 소년이 참여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었다.
버킷샵은 달랐다. 여기서는 실제로 주식을 사고파는 것이 아니었다. 주가의 방향에 베팅하는 것이었다. "이 주식이 오를 것이다" 또는 "내릴 것이다"에 돈을 거는 것. 경마와 비슷한 구조였다. 1달러부터 베팅할 수 있었고, 레버리지도 가능했다. 합법적인 곳은 아니었지만 경찰이 단속하지도 않았다. 보스턴에만 수십 곳이 있었다.
제시는 동료 보드 보이 한 명과 함께 버킷샵에 들어갔다. 주머니에는 페인 웨버에서 번 급여 일부가 있었다. 5달러.
그가 첫 베팅을 했다. 시카고 벌링턴 앤드 퀸시(Chicago, Burlington and Quincy) 철도 주식이 오를 것이라는 베팅. 그의 칠판 노트에서 이 주식이 특정 가격대에서 반등하는 패턴을 발견한 것이었다.
맞았다. 3.12달러를 벌었다. 다음 날 또 벌었다. 그다음 날도.
15세가 되기 전, 제시는 버킷샵에서 1,000달러를 벌었다. 1890년대의 1,000달러는 당시 성인 노동자 연봉에 가까운 금액이었다. 14세 소년이.
보스턴의 버킷샵들 사이에서 그의 이름이 퍼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를 "보이 플런저(Boy Plunger)"라고 불렀다. 소년 투기꾼이라는 뜻이었다.
1893년. 당신이 16세의 리버모어다. 보스턴의 모든 버킷샵에서 쫓겨났다. 주머니에는 1만 달러가 있다. 16세 소년 치고는 엄청난 돈이다. 두 가지 선택이 있다.
4. 쫓겨나다
버킷샵의 비즈니스 모델은 단순했다. 고객이 돈을 잃으면 버킷샵이 돈을 번다. 대부분의 고객은 돈을 잃었다. 그래서 버킷샵이 돈을 벌었다.
제시 리버모어는 반대였다. 그는 계속 돈을 벌었다. 그가 버는 돈은 버킷샵이 잃는 돈이었다.
처음에는 소액이라 문제가 안 됐다. 그러나 그의 베팅 규모가 커지면서 버킷샵 주인들이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15세의 소년이 매주 수백 달러를 가져가고 있었다.
보스턴의 한 버킷샵이 그를 출입 금지시켰다. 다른 버킷샵으로 갔다. 거기서도 금지됐다. 그는 변장을 하기 시작했다. 모자를 바꿔 쓰고, 가짜 이름을 댔다. 그래도 결국 들켰다.
16세가 될 무렵, 그는 보스턴의 거의 모든 버킷샵에서 출입 금지를 당했다. 너무 많이 이기는 사람은 환영받지 못하는 세계였다. 그의 누적 수익은 이 시점에서 약 1만 달러. 현재 가치로 약 35만 달러.
보스턴에서 더 이상 베팅할 곳이 없어진 그는 결심했다. 진짜 시장으로 가기로. 뉴욕.
5. 뉴욕, 그리고 첫 번째 파산
1897년, 20세의 리버모어가 뉴욕에 도착했다. 그는 곧 깨달았다. 뉴욕 주식 시장은 버킷샵과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버킷샵에서는 주가의 미세한 움직임에 베팅했다. 몇 시간, 길어야 하루 단위의 거래. 거래 비용도 거의 없었다. 리버모어의 패턴 인식 능력이 완벽하게 먹히는 환경이었다.
뉴욕증권거래소는 달랐다. 실제 주식을 사고파는 것이었다. 거래 수수료가 있었다. 호가 스프레드(매수-매도 가격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차이는, 주문을 넣으면 즉시 체결되지 않았다. 브로커에게 주문을 전달하고, 브로커가 거래소 플로어에서 체결하고, 결과가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버킷샵에서는 가격을 보고 1초 만에 베팅할 수 있었다. 실제 시장에서는 그 1초가 없었다. 이 시차가 그의 전략을 무력화시켰다.
리버모어는 뉴욕에서 첫 1년 동안 전 재산을 잃었다. 1만 달러 전부.
"나는 보스턴에서 1만 달러를 벌어 뉴욕에 왔다. 그리고 6개월 만에 전부 잃었다. 보스턴에서 통한 방법이 뉴욕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나는 게임의 규칙이 바뀌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 1만 달러를 치른 셈이었다." — 『어느 주식 투기꾼의 회상』
6. 보스턴으로 돌아가다
돈을 전부 잃은 리버모어는 보스턴으로 돌아갔다. 다시 버킷샵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 이 패턴이 몇 차례 반복됐다. 보스턴에서 벌고, 뉴욕에서 잃고. 벌고, 잃고.
그러나 매번 뉴욕에서 잃을 때마다 그는 무언가를 배웠다. 그가 깨달은 것은 이것이었다. 진짜 시장에서는 작은 움직임이 아니라 큰 움직임에 베팅해야 한다.
버킷샵에서는 주가가 1포인트 오르는 것에 베팅해서 돈을 벌 수 있었다. 거래 비용이 없으니까. 뉴욕에서는 거래 비용을 넘어서는 큰 움직임을 잡아야 했다. 1포인트가 아니라 10포인트, 20포인트의 움직임.
그리고 큰 움직임을 잡으려면, 시장 전체의 방향을 읽어야 했다. 개별 주식의 일일 패턴이 아니라, 경제 전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리버모어는 자기 전략을 바꾸기 시작했다. 단타에서 추세 추종(trend following)으로. 시장의 큰 흐름을 읽고, 그 흐름이 확인되면 대규모로 들어가는 방식. 이 전략 전환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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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907년 패닉
1907년 10월, 미국 금융 시장에 패닉이 왔다. 뉴욕의 여러 신탁회사(trust company)가 연쇄 파산하기 시작했다. 니커보커 트러스트(Knickerbocker Trust)가 무너졌다. 예금자들이 다른 은행으로 달려가 돈을 빼기 시작했다. 뱅크런(bank run)이었다. 주식 시장도 폭락했다.
리버모어는 이 패닉을 예측하고 있었다. 그는 몇 달 전부터 시장이 과열됐다고 판단하고 공매도 포지션을 쌓고 있었다. 30세의 나이에 그는 이미 뉴욕 시장에서 상당한 규모의 트레이더가 돼 있었다.
패닉이 시작되자 리버모어의 공매도 포지션이 폭발적 수익을 냈다. 10월 말까지 그의 수익은 약 100만 달러에 달했다. 현재 가치로 약 3,000만 달러.
그런데 이 시점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JP 모건(J.P. Morgan)이 개입한 것이다.
존 피어폰트 모건. 당시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금융인. 연방준비제도(Fed)가 아직 존재하지 않던 시대에, 모건은 사실상 미국의 중앙은행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가 개인 자산과 다른 은행가들의 자금을 모아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모건은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한 가지 더 했다. 대규모 공매도 투자자들에게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공매도를 중단하라."
리버모어에게도 그 메시지가 왔다. 리버모어는 공매도를 중단했다. 그리고 방향을 뒤집어 매수로 전환했다. 모건의 시장 안정화 노력이 효과를 발휘하면서 시장이 반등했고, 리버모어는 매수 포지션에서도 수익을 냈다.
1907년 패닉이 끝났을 때 리버모어의 순자산은 약 300만 달러. 현재 가치로 약 1억 달러. 30세. 그는 더 이상 보스턴의 버킷샵 소년이 아니었다. 월스트리트의 가장 유명한 투기꾼 중 한 명이 됐다.
8. 그가 배운 것
1891년부터 1907년까지, 14세에서 30세까지. 16년. 리버모어가 이 기간에 배운 것을 정리하면 세 가지다.
첫째, 시장은 패턴을 반복한다
칠판 앞에서 숫자를 적으며 발견한 패턴. 그 패턴은 사라지지 않았다. 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참여자가 바뀌어도, 인간의 탐욕과 공포가 만드는 패턴은 동일했다. 이것이 그가 평생 사용한 도구였다.
둘째, 게임의 규칙은 바뀐다
버킷샵에서 통한 방법이 뉴욕에서 통하지 않았다. 환경이 바뀌면 전략도 바뀌어야 한다. 첫 번째 파산이 그에게 이것을 가르쳤다.
셋째, 큰 돈은 큰 움직임에서 나온다
매일 1포인트를 벌어서는 부자가 될 수 없다. 시장이 크게 움직이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대규모로 들어가야 한다. 1907년 패닉에서 그가 100만 달러를 번 것은, 그가 몇 달 동안 기다리다가 큰 움직임이 왔을 때 전력을 다해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는 리버모어가 나중에 자기 책에서 정리한 핵심 원칙이 됐다. 그리고 이 원칙들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트레이더들 사이에서 성경처럼 읽히고 있다.
그러나 이 원칙을 만든 사람 자신은, 이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 반복적으로. 그리고 그것이 그의 비극의 시작이었다.
9. 이 일화가 우리에게 남긴 세 가지 교훈
첫째, 천재성과 지혜는 다른 것이다
리버모어는 숫자를 읽는 천재였다. 14세에 시장 패턴을 독학으로 발견한 것은 비범한 재능이다. 그러나 천재성은 돈을 버는 능력을 줄 뿐, 돈을 지키는 지혜를 주지 않는다. 한국 개인투자자 중 단기간에 큰 수익을 낸 사람이 있다면, 자문해야 한다. 이것이 재능인가 행운인가. 버는 것과 지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능력이다.
둘째, 환경이 바뀌면 전략도 바꿔야 한다
버킷샵에서 통한 방법이 뉴욕에서 통하지 않았다. 강세장에서 통한 전략을 약세장에서도 쓴다. 한국 시장에서 통한 전략을 미국 시장에서 쓴다. 환경이 다르면 규칙이 다르다. 리버모어는 1만 달러를 잃고서야 이것을 배웠다. 당신은 얼마를 잃어야 이것을 배울 것인가.
셋째, 큰 돈은 기다림에서 나온다
리버모어가 1907년에 100만 달러를 번 것은 하루의 판단이 아니었다. 몇 달 동안 시장을 관찰하고, 패닉의 징후를 포착하고, 인내심 있게 포지션을 쌓은 결과였다.
"돈을 벌어준 것은 내 생각이 아니었다. 앉아서 기다린 것이 돈을 벌어줬다(It was never my thinking that made the big money. It was always my sitting)."
10. 1907년의 끝에서
1907년 12월. 30세의 제시 리버모어는 뉴욕에서 가장 유명한 투기꾼 중 한 명이었다. 순자산 300만 달러. JP 모건이 메시지를 보낸 정도의 존재감.
그는 16년 전 보스턴에서 5달러를 들고 버킷샵에 들어간 소년이었다. 이제 그는 월스트리트의 가장 큰 게임에서 자기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그 앞에는 22년이 더 남아 있었다. 그 22년 동안 그는 한 번 더 전 재산을 잃고, 한 번 더 돌아오고, 역사상 가장 큰 베팅을 하고, 1억 달러를 벌고, 다시 전부 잃고, 또다시 돌아오고, 다시 잃을 것이었다.
1907년의 그는 아직 그것을 몰랐다. 그가 알고 있던 것은 하나였다. 시장은 패턴을 반복한다. 그리고 그 패턴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돈을 번다.
그가 아직 모르고 있던 것도 하나였다. 패턴을 읽는 능력이 자기 자신의 패턴을 바꿔주지는 않는다는 것. 시장의 탐욕과 공포를 읽는 천재가, 자기 안의 탐욕과 공포를 읽지 못한다는 것. 이 한 가지가 그의 인생 전체를 결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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