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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L STREET STORIES제시 리버모어 4부작 EP.2
제시 리버모어

1929년,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

1929년 검은 화요일. 다우가 하루에 12% 폭락한 역사상 최악의 거래일. 맨해튼의 한 아파트에서 52세 남자가 조용히 수익을 계산하고 있었다. 약 1억 달러(현재 가치 약 18억 달러). 수백만 명이 전 재산을 잃은 날, 100개 계좌에 숨겨둔 공매도로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투기꾼이 된 제시 리버모어. 그의 정점이자 비극의 시작.

2026년 4월 21일·15분 읽기
제시 리버모어
AI PODCAST

1929년,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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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10월 29일 화요일. 뉴욕증권거래소. 개장 벨이 울리자마자 매도 주문이 쏟아졌다. 하루에 1,640만 주가 거래됐다. 다우지수가 12% 폭락했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거래일. 그날 저녁 맨해튼의 한 아파트에서, 52세의 남자가 조용히 수익을 계산하고 있었다. 약 1억 달러. 이것은 제시 리버모어가 세상의 종말을 돈으로 바꾼 날의 기록이다.

1. 1920년대의 광기

1929년의 폭락을 이해하려면, 그 전 10년의 광기를 먼저 봐야 한다.

1920년대 미국은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였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 경제는 유례없는 호황에 들어갔다. 자동차 산업이 폭발했다. 라디오가 보급됐다. 전기가 도시를 밝혔다. 소비가 폭증했다.

주식 시장도 함께 올랐다. 1921년부터 1929년까지 다우지수는 약 6배 상승했다. 63포인트에서 381포인트로.

문제는 그 상승의 구조에 있었다. 마진 거래(margin trading)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주식을 살 때 전액을 내지 않아도 됐다. 10%만 현금으로 내고 나머지 90%를 빌려서 살 수 있었다. 즉, 10배 레버리지. 100달러로 1,000달러어치 주식을 살 수 있었다.

주가가 오를 때는 이 레버리지가 수익을 10배로 키웠다. 그러나 주가가 떨어지면 손실도 10배가 됐다. 주가가 10%만 떨어져도 원금 전액을 잃는 구조.

1928년부터 이 마진 거래가 미국 전역에서 일상화됐다. 택시 기사가 주식을 샀다. 구두닦이가 주식을 샀다. 가정주부가 주식을 샀다. 모두가 레버리지를 쓰고 있었다.

이 시기 가장 유명한 일화가 있다. 존 F. 케네디의 아버지 조셉 케네디(Joseph Kennedy)가 구두를 닦으러 갔다. 구두닦이 소년이 그에게 주식 추천을 했다. 케네디는 사무실로 돌아가자마자 자기 주식을 전부 팔았다.

"구두닦이까지 주식을 이야기하면 시장이 끝이다." — 조셉 케네디 (일화)

2. 리버모어의 1920년대

1920년대의 리버모어는 어떤 상태였는가.

그는 이미 두 번의 파산과 두 번의 복귀를 경험한 상태였다. 1907년 패닉에서 300만 달러를 벌었지만, 1908년에 면화(cotton) 투기에서 전 재산을 잃었다. 다시 올라와서 수백만 달러를 벌었지만, 1915년에 다시 파산했다.

두 번의 파산 패턴은 동일했다. 큰 수익을 낸 직후, 확신이 과도해져서 더 큰 베팅을 하고, 시장이 반대로 움직이면 레버리지 때문에 전 재산을 잃는 것.

1917년, 그는 세 번째로 재기했다. 1차 세계대전 중 상품(commodity) 시장에서 수익을 냈다. 1920년대 초반에는 다시 수백만 달러를 축적했다.

그리고 1920년대 중반부터 그는 시장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흥분하는 동안 그는 조용히 숫자를 봤다.

그가 본 것은 세 가지였다.

  • 첫째, 마진 부채의 규모. 뉴욕증권거래소의 마진 대출 잔고가 1927년부터 급증하기 시작했다. 1928년에는 전년 대비 두 배. 시장 전체가 빚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 둘째, 거래량의 이상. 주가가 오르는 속도보다 거래량이 증가하는 속도가 더 빨랐다. 이것은 리버모어의 30년 경험에서 시장 정점의 징후였다.
  • 셋째, 리더 종목의 약화. 시장을 이끌던 대형주들이 신고가를 갱신하지 못하면서, 소형주와 투기주만 오르는 현상. 리버모어는 이것을 "시장의 마지막 단계"로 해석했다.

1929년 여름, 리버모어는 결심했다. 공매도를 시작하기로.

3. 비밀 작전

1929년 여름과 초가을. 리버모어는 공매도 포지션을 쌓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전과 다른 방식을 썼다. 비밀리에.

그는 자기 이름으로 거래하지 않았다. 100개가 넘는 브로커 계좌를 사용했다. 각 계좌에 소규모 주문을 넣었다. 어떤 계좌는 아내 이름으로, 어떤 계좌는 회사 이름으로, 어떤 계좌는 측근 이름으로. 한 곳에서도 그의 전체 포지션 규모를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왜 이렇게 했는가.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시장 영향. 리버모어가 대규모 공매도를 한다는 소문이 퍼지면, 다른 투기꾼들이 따라서 공매도를 시작할 것이었다. 그러면 주가가 너무 빨리 떨어져서 그의 포지션 구축이 어려워진다.

둘째, 정치적 리스크. 1907년 패닉 때 JP 모건이 그에게 공매도 중단을 요청한 경험이 있었다. 1929년에 대규모 공매도가 알려지면, 정부나 금융 당국이 개입할 수 있었다.

몇 달에 걸쳐 그는 포지션을 조용히 늘렸다. 최종 규모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러 추산에 따르면 수천만 달러 규모의 공매도 포지션이었다.

그리고 10월이 왔다.

4. 검은 목요일과 검은 화요일

1929년 10월 24일 목요일. 검은 목요일(Black Thursday).

뉴욕증권거래소 개장과 동시에 매도 주문이 폭주했다. 첫 30분 동안 가격이 급락했다. 패닉이 시작됐다. 거래소 플로어는 아수라장이었다. 트레이더들이 소리를 지르고, 종이가 날리고, 전신 시스템이 과부하에 걸려 주가 정보가 한 시간 이상 지연됐다.

오후에 JP 모건의 토마스 라몬트(Thomas Lamont)를 비롯한 주요 은행가들이 긴급 모임을 가졌다. 그들은 시장을 지지하기 위해 자금을 모아 대형주를 매수하기로 합의했다. 이 소식에 시장이 일시적으로 안정됐다. 다우는 그날 2% 하락으로 마감했다.

금요일과 토요일은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10월 28일 월요일. 검은 월요일. 다우가 13% 폭락. 은행가들의 지지 매수는 더 이상 효과가 없었다.

10월 29일 화요일. 검은 화요일(Black Tuesday). 역사상 최악의 날.

개장과 동시에 매도 주문이 쏟아졌다. 하루 거래량 1,640만 주.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규모였다(일반적 하루 거래량의 4-5배). 다우가 추가로 12% 폭락.

이틀 만에 다우가 25% 떨어졌다. 일주일 만에 30% 넘게. 마진 콜(margin call)이 연쇄적으로 터지면서 레버리지를 쓴 투자자들이 동시에 강제 청산됐다. 한 사람의 청산이 가격을 더 떨어뜨렸고, 그 하락이 다른 사람의 마진 콜을 촉발했다. 악순환.

리버모어는 이 모든 것을 자기 사무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공매도 포지션이 매 시간 수백만 달러의 수익을 내고 있었다.

5. 1억 달러

검은 화요일이 끝난 뒤, 리버모어는 수익을 계산했다. 정확한 숫자에 대해서는 여러 추산이 있다. 리버모어 본인이 공식적으로 밝힌 적은 없다. 그러나 여러 금융 역사가들의 추산에 따르면, 1929년 폭락 기간 동안 그의 공매도 수익은 약 1억 달러에 달했다.

1929년의 1억 달러. 2025년 가치로 환산하면 약 18억 달러. 한 개인이 주식 시장에서 번 금액으로서는 당시 역사상 최대였다. 그는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 중 한 명이 됐다.

그의 생활도 그에 맞게 화려해졌다.

  • 맨해튼 5번가에 10개 방짜리 아파트. 전용 엘리베이터.
  • 파크애비뉴의 별도 사무실. 전용 전신 시스템.
  • 롤스로이스 여러 대. 운전사가 딸린.
  • 요트 아니타(Anita): 300피트(약 90미터) 길이. 승무원 50명. 당시 미국에서 가장 큰 개인 요트 중 하나.

그의 사생활도 화려했다. 두 번째 아내 도로시(Dorothy)와의 결혼은 이미 금이 가고 있었다. 그는 여러 여성과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맨해튼 나이트클럽의 단골이었다.

보이 플런저에서 미국의 왕이 된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 정점에는 이미 균열이 시작되고 있었다.

1929년 10월. 당신이 리버모어다. 공매도로 1억 달러를 벌었다.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투기꾼이다. 그러나 수백만 명이 당신이 번 돈의 반대편에서 전 재산을 잃었다. 언론이 당신을 악마로 그린다. 가족이 위협받고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6. 1929년의 미국

리버모어가 1억 달러를 번 그 며칠 동안, 미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가.

자살. 검은 화요일 이후 뉴욕에서 자살률이 급증했다는 도시전설이 돌았다. 실제 자살률 통계로 보면 폭발적 증가는 없었지만, 몇몇 유명한 자살 사건이 언론에 크게 보도됐다.

뱅크런. 은행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1930년부터 1933년까지 미국 은행의 약 40%가 파산했다. 9,000개 이상의 은행이 문을 닫았다. 예금자들의 돈이 사라졌다. 당시에는 예금보험 제도가 없었다.

실업. 대공황이 시작됐다. 1929년 3%였던 실업률이 1933년에는 25%까지 치솟았다. 미국인 4명 중 1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리버모어는 이 재앙에서 돈을 번 사람이었다. 언론이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일부는 그를 "미국을 파산시킨 남자(The Man Who Crashed America)"라고 불렀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리버모어가 대공황을 만든 것은 아니었다. 시장의 구조적 과열과 마진 거래의 남용이 원인이었고, 리버모어는 그 결과에 베팅한 것뿐이었다. 그러나 수백만 명이 전 재산을 잃는 와중에 1억 달러를 번 사람에 대한 대중의 시선은 우호적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의 5번가 아파트 앞에서 항의했다. 가족에 대한 위협도 있었다. 아들들은 학교에서 놀림을 받았다. "네 아빠가 미국을 망하게 했다."

리버모어는 경호원을 고용했다. 외출을 줄였다. 요트에서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아졌다.

1억 달러를 벌었지만, 그의 인생은 행복해지지 않았다.

7. 왜 그는 1억 달러를 지키지 못했는가

여기서 가장 큰 질문이 나온다. 리버모어는 1929년에 1억 달러를 벌었다. 그런데 10년 뒤인 1940년에 그는 파산한 상태였다. 1억 달러가 어디로 갔는가.

전체 과정은 3화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핵심만 짚으면 이렇다.

첫째, 그는 멈추지 못했다

1억 달러를 벌고 나서 그는 은퇴하지 않았다. 계속 거래했다. 더 큰 베팅을 했다. 시장이 바닥을 찍은 뒤 반등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방향을 제때 전환하지 못했다. 공매도에서 벌었으니 공매도에서 더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둘째, 레버리지

그의 영원한 약점. 자기 돈으로만 거래했다면 1억 달러를 잃기 어렵다. 그러나 그는 항상 레버리지를 썼다. 빌린 돈으로 거래했다. 1억 달러의 10배, 20배 규모로 베팅했다. 한두 번만 크게 틀려도 전 재산이 사라지는 구조였다.

셋째, 개인 생활의 비용

10개 방짜리 아파트, 요트, 롤스로이스, 경호원, 파티. 그의 생활비는 연간 수백만 달러에 달했다. 시장에서 수익이 나지 않는 기간에도 이 비용은 계속 빠져나갔다.

넷째, 이혼

두 번째 아내 도로시와의 이혼이 1932년에 이루어졌다. 위자료와 재산 분할로 상당한 자산이 빠져나갔다.

이 네 가지가 합쳐져서, 1929년의 1억 달러는 10년 만에 0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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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리버모어와 버리

리버모어의 1929년은 77년 뒤 마이클 버리의 2008년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둘 다 시장의 과열을 봤다. 둘 다 반대편에 베팅했다. 둘 다 모두에게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다. 둘 다 옳았다. 둘 다 엄청난 수익을 냈다.

그러나 수익을 낸 뒤의 행동이 완전히 달랐다.

버리는 멈췄다. 사이언 캐피털을 닫았다. 인터뷰를 거절했다. 12년간 사라졌다. 자기 돈만 조용히 굴렸다. 그래서 그의 수익은 보존됐다.

리버모어는 멈추지 못했다. 계속 거래했다. 더 큰 베팅을 했다. 더 화려하게 살았다. 그래서 그의 수익은 사라졌다.

같은 재능. 같은 성공. 정반대의 결말.

차이는 무엇인가. 멍거의 용어를 빌리면 "어리석은 짓을 피하는 능력"이다. 버리는 어리석은 짓을 피했다(정점에서 멈추는 것). 리버모어는 어리석은 짓을 반복했다(정점에서 더 가속하는 것).

리버모어 자신도 이것을 알고 있었다.

"월스트리트에는 새로운 것이 없다. 투기는 산처럼 오래됐다. 시장에서 일어나는 일은 과거에도 일어났고 미래에도 일어날 것이다. 내가 이것을 기억하지 못한 적은 없다. 다만, 기억하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 인간이다."
당신 vs 대중 vs 거장
1921-29 다우 상승
63 → 381 포인트 (약 6배)
1929년 마진 비율
현금 10% + 빌린 돈 90% (10배 레버리지)
검은 화요일 다우 하락
-12% (하루)
검은 화요일 거래량
1,640만 주 (평상시 4-5배)
일주일 하락률
-30%+
리버모어 공매도 수익
약 $100M (현재 가치 ~$1.8B)
1933년 미국 실업률
25% (1929년 3%)
1930-33 파산 은행
9,000개+ (미국 은행의 약 40%)
리버모어 vs 버리 차이
정점에서 "멈추기"의 유무
핵심 자기 고백
"기억하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 인간이다."

9. 이 일화가 우리에게 남긴 세 가지 교훈

첫째, 정점을 인식하는 것과 정점에서 멈추는 것은 다른 능력이다

리버모어는 1929년 시장의 정점을 정확히 인식했다. 그래서 1억 달러를 벌었다. 그러나 자기 인생의 정점에서는 멈추지 못했다. 시장을 읽는 능력과 자기를 통제하는 능력은 완전히 다른 근육이다. 한국 개인투자자가 큰 수익을 낸 순간, 가장 먼저 자문해야 할 것은 "다음에 뭘 살까"가 아니라 "지금 멈춰야 하는가"다.

둘째, 레버리지는 천재도 죽인다

리버모어는 시장을 읽는 천재였다. 그런데 그 천재가 네 번 파산했다. 네 번 다 레버리지 때문이었다. 레버리지가 없었다면 그는 한 번도 파산하지 않았을 것이다. 멍거가 말한 "똑똑한 사람이 파산하는 세 가지 이유: 술, 여자, 레버리지"가 리버모어에게 세 가지 다 해당됐다. 한국 개인투자자 중 미수, 신용, 선물, CFD 등 레버리지를 쓰는 사람이 많다. 리버모어보다 시장을 잘 읽는 자신이 있는가? 없다면 레버리지를 쓰지 마라.

셋째, "기억하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 인간이다"

리버모어 자신이 이것을 알고 있었다. 자기 책에 직접 썼다. 그런데도 반복했다. 이것이 인간의 가장 깊은 한계다. 당신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시스템을 만들어라. 손절 규칙, 포지션 한도, 냉각 기간. 의지가 아니라 시스템으로 자신을 통제하라. 리버모어에게 그 시스템이 있었다면, 그의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다.

10. 1929년의 끝에서

1929년 12월. 52세의 리버모어는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투기꾼이었다.

5번가의 아파트에서 창밖을 내다보면 센트럴파크가 보였다. 요트 아니타는 뉴욕 항구에 정박해 있었다. 은행 계좌에는 1억 달러가 있었다.

그는 14세에 5달러를 들고 보스턴 버킷샵에 들어간 소년이었다. 38년 만에 그는 시대의 정점에 올랐다.

그가 그 순간 알았어야 할 것이 있다. 버핏이 알았던 것. 린치가 알았던 것. 버리가 알았던 것. 정점에서 멈추는 것.

그러나 리버모어는 그것을 몰랐다. 또는 알았지만 실행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앞에는 11년이 남아 있었다. 그 11년 동안 1억 달러는 사라질 것이었다.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벌고 잃고, 벌고 잃고. 이 패턴은 1907년부터 반복됐고, 1929년 이후에도 멈추지 않을 것이었다.

시장의 패턴을 읽는 천재가, 자기 자신의 패턴을 끝내 바꾸지 못한 이야기.

그 이야기의 다음 장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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