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먼데이의 골프장 — 하루에 18억 달러를 잃은 오후
1987년 10월 19일 블랙먼데이. 피터 린치는 아일랜드 골프장에서 전화를 받았다. "마젤란이 하루에 18억 달러를 잃었어." 그가 대서양을 건너 돌아와서 한 일. 공포에 팔지 않고 오히려 매수했던 방식. 폴 튜더 존스의 정반대 선택과의 대비.

블랙먼데이의 골프장 — 하루에 18억 달러를 잃은 오후
1987년 10월 19일 월요일. 피터 린치는 아일랜드에 있었다. 아내 캐롤린과의 여행이었다. 두 사람은 골프장에 서 있었다. 린치가 티샷을 준비하고 있을 때 클럽하우스에서 누군가가 뛰어왔다. "린치 씨, 전화요. 뉴욕에서요. 급하답니다." 이것은 피터 린치가 대서양 건너편에서 미국 금융사 최악의 하루를 맞이한 이야기다.
1. 아일랜드의 10월
1987년 10월 중순. 린치는 드물게 휴가를 내고 있었다. 마젤란 펀드를 운용한 지 10년째였다. 펀드 자산은 이미 100억 달러를 넘어서고 있었다. 10년간 하루 14시간, 주 6일. 캐롤린이 여행을 제안했다. 아일랜드.
출발 전 린치는 시장 상태를 점검했다. 불안한 신호가 있었다. 10월 14일 수요일, 다우가 3.8% 하락. 10월 16일 금요일에는 또 4.6% 하락. 이틀 만에 8% 넘게 떨어진 것이다.
린치는 고민했다. 그러나 캐롤린과의 약속을 깨고 싶지 않았다. 그는 사무실에 지시를 남겼다.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해라."
10월 19일 월요일. 그날이 왔다.
2. 전화
10월 19일 월요일 오후. 린치와 캐롤린은 아일랜드 남서부의 한 골프장에 있었다. 날씨는 흐렸다. 바람이 불었다. 린치가 티샷을 준비하고 있었다.
클럽하우스 쪽에서 직원이 뛰어왔다.
"린치 씨, 미국에서 전화입니다. 급하다고 합니다."
린치가 전화기를 들었다. 수화기 너머는 피델리티 보스턴 본사였다.
"피터, 시장이 무너지고 있어. 지금 다우가 300포인트 이상 빠졌어. 아직 장 중이야."
다우 300포인트면 약 15% 하락. 하루에. 그런 일은 1929년 대공황 이후로 일어난 적이 없었다.
"마젤란은?" "마젤란이… 지금 기준으로 약 18억 달러 손실이야."
18억 달러. 하루에. 마젤란 전체 자산의 약 18%. 한 시간에 수억 달러씩 증발하고 있었다.
린치는 전화를 끊었다. 캐롤린에게 돌아가서 말했다. "돌아가야 해."
3. 블랙먼데이
1987년 10월 19일 월요일. 미국 금융사에서 블랙먼데이(Black Monday)로 기록된 날.
-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 하루에 508포인트 하락. 22.6% 폭락.
- 역사상 최악의 단일 거래일 하락률. 1929년 대공황 첫날(12.8%)의 거의 두 배.
- S&P 500: 20.5% 하락
- 나스닥: 11.4% 하락
- 홍콩: 45.5% 폭락 후 일주일간 시장 폐쇄
원인은 포트폴리오 보험(Portfolio Insurance)이라는 전산 매매 프로그램이 주범으로 지목됐다. 시장이 빠르게 떨어지자, 이 프로그램들이 동시에 매도 주문을 쏟아냈고, 그 매도가 시장을 더 떨어뜨렸다. 기계가 기계를 무너뜨린 것이다.
미국에서만 하루에 약 5,000억 달러의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마젤란 펀드는 그 중 18억 달러를 잃었다.
4. 대서양을 건너다
린치는 아일랜드에서 즉시 귀국편을 구했다. 당일 보스턴행 직항편이 없었다. 다음 날 10월 20일 화요일 아침 비행기. 런던 경유 보스턴행.
그날 밤 아일랜드 호텔 방에서 린치는 잠을 자지 못했다. 캐롤린이 옆에 있었다. 그녀가 물었다. "최악의 경우 어떻게 되는 거야?"
린치가 대답했다. "모르겠어. 내일 시장이 또 떨어지면, 마젤란은 환매 요청을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어."
린치가 두려워한 것은 주가 하락 자체가 아니었다. 환매 러시였다. 투자자들이 공포에 빠져 동시에 환매를 요청하면, 펀드는 주식을 강제로 팔아서 현금을 만들어야 한다.
5. 돌아온 날
10월 20일 화요일 오후, 린치가 보스턴에 도착했다. 그는 공항에서 바로 피델리티 본사로 갔다. 시장은 전날의 폭락에서 반등하고 있었다. 다우 장중 5.9% 반등.
린치는 1,400개 종목을 하나씩 봤다. 노란 리걸 패드에 메모를 했다. 그리고 결정을 내렸다.
그는 팔지 않았다. 오히려 샀다.
린치는 폭락한 종목 중에서 펀더멘털이 변하지 않은 회사들을 골라서 추가 매수했다. 포드, 팬니 메이, 필립 모리스.
"주가가 22% 떨어졌다고 코카콜라의 맛이 바뀌었는가? 포드의 공장이 멈추었는가? 던킨도넛츠의 커피가 나빠졌는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사람들의 감정뿐이다."
6. 환매와의 전쟁
블랙먼데이 이후 며칠 동안 마젤란에 환매 요청이 쏟아졌다. 수억 달러 규모.
린치의 원칙은 이랬다. 가장 좋은 종목은 절대 팔지 않는다. 환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팔아야 한다면, 차선의 종목을 판다.
"블랙먼데이에서 가장 힘든 것은 시장이 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힘든 것은 좋은 주식을 싼 가격에 팔아야 했다는 것입니다. 투자자들이 환매하니까. 그들이 공포에 팔 때, 저는 그들의 공포 때문에 좋은 주식을 팔아야 했습니다. 이것이 뮤추얼 펀드 매니저의 가장 큰 한계입니다."
이 경험이 3년 뒤 그의 은퇴 결정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높다.
1987년 10월 19일. 당신이 피터 린치다. 아일랜드 골프장에서 전화를 받았다. 마젤란이 하루에 18억 달러를 잃었다. 투자자들이 환매를 요청하고 있다. 당신은 대서양 건너편에 있어서 오늘 돌아갈 수 없다. 전화로만 지시할 수 있다. 지금 결정해야 한다.
7. 회복
블랙먼데이 이후 시장은 빠르게 회복됐다. 1987년 말까지 다우는 블랙먼데이 수준에서 약 15% 반등했다. 1989년에는 블랙먼데이 이전 고점을 완전히 회복했다. 2년 만에.
마젤란 펀드도 회복됐다. 1987년 전체로 보면 연간 수익률 1%. 블랙먼데이의 18억 달러 손실을 거의 만회한 것이다. 1988년에는 22.8%. 1989년에는 34.6%.
반면, 블랙먼데이에 공포에 빠져 환매한 투자자들은 바닥에서 팔고 나간 뒤, 시장이 회복될 때 다시 들어오지 못했다.
"시장의 폭락은 일시적입니다. 그러나 공포에 파는 것은 영구적 손실입니다."
"1965년부터 1995년까지 30년간 S&P 500에 투자했다면 연 11.1%의 수익을 냈습니다. 그런데 이 30년 중에서 가장 좋은 10일을 빠뜨리면 — 단 10일 — 수익률이 연 8.5%로 떨어집니다. 가장 좋은 30일을 빠뜨리면 연 6.1%로 떨어집니다. 시장에 머물러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장 좋은 날은 항상 가장 나쁜 날 직후에 옵니다."
블랙먼데이 다음 날인 10월 20일, 다우는 5.9% 반등했다. 10월 21일에는 또 2.6% 올랐다. 가장 나쁜 날 직후에 가장 좋은 날이 온 것이다.
"공포의 한가운데서 내리는 결정은 대부분 나쁜 결정입니다. 할 수 있다면, 하루를 기다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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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폴 튜더 존스와의 대비
같은 블랙먼데이에 대해 정반대의 이야기를 한 사람이 있다. 폴 튜더 존스(Paul Tudor Jones). 매크로 헤지펀드 매니저. 그는 블랙먼데이를 예측한 사람이었다.
존스는 1987년 10월 이전에 미국 증시가 1929년 대공황 직전과 동일한 차트 패턴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대규모 공매도 포지션을 쌓았다. 블랙먼데이 당일, 그의 펀드는 하루에 약 1억 달러를 벌었다. 한 달 수익률 62%.
린치는 폭락에서 18억 달러를 잃었고, 존스는 폭락에서 1억 달러를 벌었다. 같은 날, 정반대의 결과.
린치는 바텀업 종목 선별가였다. 존스는 탑다운 매크로 트레이더였다. 블랙먼데이라는 하루만 놓고 보면 존스가 이겼고, 13년 전체를 놓고 보면 린치가 이겼다.
"시장의 폭락을 예측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가끔 맞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시장이 폭락하지 않을 때도 그들은 공매도 포지션을 가지고 있습니다. 폭락을 기다리는 동안의 기회비용이 폭락에서 버는 것보다 큰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시장을 예측하는 데 1분도 쓰지 않습니다."
9. 이 일화가 우리에게 남긴 세 가지 교훈
첫째, 공포의 한가운데서 내리는 결정은 대부분 나쁜 결정이다
블랙먼데이에 환매한 투자자들은 바닥에서 팔고 반등을 놓쳤다. 린치는 하루를 기다렸다. 한국 개인투자자에게도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시장이 폭락하는 날, 가장 좋은 행동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다. 최소한 하루를 기다려라.
둘째, 시장에 머물러 있는 것이 시장을 예측하는 것보다 낫다
30년 중 가장 좋은 10일을 놓치면 수익률이 연 11%에서 8.5%로 떨어진다. 시장을 떠났다가 돌아오려는 전략(market timing)은 이론적으로는 매력적이지만 실전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차라리 시장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서, 폭락이 오면 추가 매수하는 것이 린치의 방식이었다.
셋째, 남의 돈을 운용하는 것의 진짜 대가를 이해하라
린치가 블랙먼데이에서 가장 괴로웠던 것은 시장 폭락이 아니었다. 투자자들의 환매 때문에 좋은 주식을 싼 가격에 강제로 팔아야 했던 것이었다. 개인투자자에게는 이 한계가 없다. 당신은 환매 요청을 받지 않는다. 당신만의 돈을 당신만의 타이밍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것은, 월스트리트의 어떤 기관투자자도 갖지 못한 특권이다.
10. 세 개의 날
피터 린치의 인생에는 세 개의 결정적 날이 있었다.
- 1977년 5월. 33세의 린치가 마젤란 펀드를 맡은 날.
- 1987년 10월 19일. 43세의 린치가 아일랜드 골프장에서 전화를 받은 날.
- 1990년 5월 31일. 46세의 린치가 피델리티에 사임서를 낸 날.
세 개의 날이 한 사람의 투자 인생 전체를 보여준다. 시작. 시험. 그리고 선택.
35년이 지난 지금, 82세의 피터 린치에게 "가장 좋은 투자가 뭐였냐"고 물으면 그는 이렇게 답한다.
"1990년에 은퇴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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