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의 파산
1908년, 1915년, 1934년, 1940년. 제시 리버모어는 네 번 전 재산을 잃었다. 매번 직전에 엄청난 수익을 냈고, 매번 레버리지와 과신으로 무너졌다. "시장의 패턴은 안다. 나 자신이 반복한다는 것도 안다. 다만 아는 것과 멈추는 것은 다른 문제다." 천재가 자기 자신의 패턴을 끝내 바꾸지 못한 이유 — 투기 중독의 기록.

네 번의 파산
1908년. 1915년. 1934년. 1940년. 제시 리버모어는 네 번 전 재산을 잃었다. 그리고 세 번 돌아왔다. 네 번째는 돌아오지 못했다. 시장의 패턴을 읽는 천재가 자기 자신의 패턴을 바꾸지 못한 이유에 대한 기록이다.
1. 첫 번째 파산 — 면화의 유혹 (1908)
1907년 패닉에서 300만 달러를 번 직후였다. 30세. 리버모어는 자기가 무적이라고 느꼈다.
다음 해인 1908년, 그는 주식이 아닌 다른 시장에 눈을 돌렸다. 면화(cotton) 선물. 한 지인이 면화 가격이 오를 거라는 내부 정보를 줬다. 리버모어는 이 정보를 믿었다. 그리고 자기 자산의 대부분을 면화 선물에 투입했다. 레버리지를 사용해서.
면화 가격은 올랐다. 처음에는. 리버모어의 수익이 쌓였다. 그는 포지션을 더 키웠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 가격이 반전됐다. 급격하게. 리버모어가 포지션을 청산하기도 전에 마진 콜이 왔다.
300만 달러가 사라졌다. 전부.
그가 이 파산에서 배운 교훈을 자기 책에 적었다.
"나는 두 가지 실수를 했다. 첫째, 남의 정보를 믿은 것. 둘째, 내가 모르는 시장에서 거래한 것. 나는 주식 시장의 패턴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면화 시장은 달랐다. 다른 규칙이 지배하는 곳이었다. 나는 그 규칙을 몰랐다."
멍거의 "능력의 범위(Circle of Competence)"와 정확히 같은 교훈이었다. 멍거가 이 용어를 만들기 60년 전에 리버모어가 같은 것을 경험한 것이다.
다만, 멍거와 리버모어의 차이는 이것이었다. 멍거는 이 교훈을 평생 지켰다. 리버모어는 이 교훈을 적어놓고도 다시 어겼다.
2. 첫 번째 복귀
파산 후 리버모어는 다시 보스턴으로 갔다. 세 번째였다. 버킷샵에서 종잣돈을 만들기 위해. 그러나 이번에는 버킷샵도 쉽지 않았다. 그의 이름이 너무 알려져 있었다.
그는 친구에게 돈을 빌렸다. 약간의 자금으로 다시 뉴욕 시장에서 거래를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작은 포지션부터. 자기가 아는 시장, 자기가 아는 패턴에서만.
2년이 걸렸다. 1910년까지 그는 다시 수십만 달러를 모았다. 1911년에는 100만 달러를 넘겼다.
그는 복귀했다. 첫 번째 파산은 일시적 실수였다고 자기 자신에게 말했다. 면화 시장에 들어간 것이 실수였을 뿐, 자기 본업인 주식 투기에서는 여전히 최고라고.
이 자기 확신이 두 번째 파산의 씨앗이었다.
3. 두 번째 파산 — 시장이 변했다 (1915)
1913-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됐다. 미국 증시는 한때 폐쇄됐다. 시장이 다시 열렸을 때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전쟁 경제. 물자 수요 폭발. 산업 구조 전환. 리버모어가 익숙한 시장의 패턴이 작동하지 않는 환경이 됐다.
그는 이 변화를 인식하지 못했다. 기존 패턴에 따라 거래를 계속했다. 그리고 연속으로 틀렸다. 방향이 맞아도 타이밍이 틀렸고, 타이밍이 맞아도 규모가 과했다.
1915년, 두 번째 파산. 다시 전 재산을 잃었다. 이번에는 빚까지 졌다. 약 100만 달러의 부채. 38세.
"나는 시장이 변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시장의 패턴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장의 환경은 변한다. 패턴이 작동하는 조건이 달라지는 것이다. 나는 조건이 달라졌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1화에서 다룬 교훈 — "게임의 규칙은 바뀐다" — 을 그가 다시 배우고 있었다. 같은 교훈을 두 번째로. 대가는 더 컸다.
4. 두 번째 복귀
두 번째 파산 후의 리버모어는 비참했다. 빚이 100만 달러. 신용이 바닥. 브로커들이 그와 거래하기를 거부했다. 파산한 투기꾼에게 돈을 빌려줄 사람은 없었다.
그는 한 가지 방법을 찾았다. 자기 이름으로 거래할 수 없으니 다른 사람의 계좌를 빌렸다. 친구와 지인들의 계좌에서 소액으로 거래를 시작했다.
이번에도 시간이 걸렸다. 1916년부터 1917년까지 천천히 자금을 불렸다. 1차 세계대전의 전시 경제에서 기회를 찾았다. 철강, 구리, 군수 산업.
1917년 말, 그는 빚을 갚기 시작했다. 1919년에는 빚을 전부 청산했다. 1920년대 초에는 다시 수백만 달러를 가진 사람이 됐다.
두 번째 복귀. 5년 걸렸다. 그리고 1920년대의 강세장이 시작됐다. 이것이 1929년의 1억 달러로 이어지는 상승 곡선이었다.
5. 세 번째 파산 — 1억 달러의 증발 (1930-1934)
1929년 10월, 1억 달러. 2화에서 다뤘듯이 리버모어는 이 돈을 지키지 못했다.
1930년부터 1934년까지 그에게 일어난 일을 시간순으로 보면 이렇다.
1930년: 대공황 이후 시장이 일시적으로 반등했다. 리버모어는 이 반등에서 매수 포지션을 잡았다. 처음에는 수익이 났다. 그런데 1930년 하반기 시장이 다시 급락했다. 그는 매수 포지션을 들고 있었다. 대규모 손실.
1931년: 방향을 바꿔 공매도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맞았다. 시장이 계속 떨어졌다. 수익을 회복했다. 그런데 1931년 말 연방준비제도가 금리를 올리면서 시장이 일시적으로 반등했을 때, 그는 공매도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었다. 다시 손실.
1932년: 방향 전환을 반복했다. 매수, 공매도, 매수, 공매도. 매번 타이밍이 어긋났다. 시장이 바닥을 찾지 못하는 극도의 변동성 속에서, 그의 레버리지 포지션이 매번 잘못된 방향에 서 있었다.
1933-1934년: 이혼 비용, 생활비, 빚. 거래 손실과 개인 지출이 합쳐져서 자산이 급격히 줄었다.
1934년, 리버모어는 세 번째 파산을 공식 선언했다. 법원에 파산 신청(bankruptcy filing)을 제출했다. 자산 약 8만 4,000달러. 부채 약 226만 달러.
5년 전 1억 달러를 가졌던 사람이 8만 4,000달러만 남긴 것이다. 1,190분의 1로 줄었다.
파산 신청서에 적힌 그의 자산 목록은 비참했다. 의류와 개인 소지품. 그게 거의 전부였다.
당신이 리버모어다. 세 번 파산했다. 세 번 돌아왔다. 1934년, 세 번째 파산 직후. 57세. 빚이 226만 달러. 자산 8만 4,000달러. 앞에 세 가지 선택이 있다.
6. 패턴의 패턴
세 번의 파산을 나란히 놓으면 패턴이 보인다. 리버모어 자신의 패턴이다.
- 1차 파산 (1908): 직전 $3M → 면화 선물 → 모르는 시장 진입
- 2차 파산 (1915): 직전 수백만 달러 → 전시 경제 적응 실패 → 환경 변화 무시
- 3차 파산 (1934): 직전 $100M → 레버리지 과다 + 방향 전환 반복 → 정점에서 멈추지 못함
세 번 다 공통점이 있다.
공통점 1: 큰 성공 직후에 파산했다. 300만 달러 벌고 파산. 수백만 달러 벌고 파산. 1억 달러 벌고 파산. 성공이 오히려 과신을 만들었고, 과신이 과도한 베팅을 만들었고, 과도한 베팅이 파산을 만들었다.
공통점 2: 레버리지가 항상 원인이었다. 세 번 다 자기 돈 이상으로 빌려서 거래했다. 레버리지 없이 거래했다면 한 번도 파산하지 않았을 것이다. 손실은 봤겠지만 전 재산을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통점 3: 자기 규칙을 어겼다. "모르는 시장에 들어가지 마라." "환경이 바뀌면 전략을 바꿔라." "큰 돈은 기다림에서 나온다." 이 세 가지를 그 자신이 책에 적어놓고, 세 번 다 어겼다.
리버모어는 시장의 패턴을 읽는 천재였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패턴은 읽지 못했다. 또는 읽었지만 바꾸지 못했다. 이것이 그의 비극의 본질이었다.
7. 세 번째 복귀, 그리고 네 번째 파산
1934년 파산 후, 리버모어는 한 번 더 돌아오려 했다.
그는 1935년부터 다시 소규모로 거래를 시작했다. 친구들에게 빌린 돈과, 세 번째 아내 해리엇(Harriet Metz Noble)의 자산이 종잣돈이 됐다. 해리엇은 부유한 상속녀였다.
처음에는 조심했다. 작은 포지션. 자기 규칙을 다시 떠올렸다. "기다려라. 큰 움직임이 올 때까지."
1937년에 시장이 급락했다. 리버모어는 이번에도 공매도로 수익을 냈다. 수십만 달러. 1938년에도 일부 수익을 냈다.
그러나 이 복귀는 이전과 달랐다. 규모가 작았고, 확신이 흔들렸고, 체력이 떨어졌다. 60세가 넘어가고 있었다. 30년간의 투기 생활이 그를 소진시켰다.
1939년, 그는 자기 인생의 마지막 책을 출간했다. 『How to Trade in Stocks(주식 거래법)』. 자기가 30년간 배운 거래 원칙을 정리한 책이었다. 책은 잘 팔리지 않았다. 1939년 미국인들은 주식 거래법에 관심이 없었다. 대공황의 상처가 너무 깊었다.
1939년 말부터 1940년에 걸쳐 리버모어의 거래는 연속으로 실패했다. 정확한 손실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마지막 자산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1940년 가을, 그는 다시 빚에 시달리고 있었다. 네 번째 파산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전과 달랐다. 이전 세 번은 파산해도 돌아올 에너지가 있었다. 20대에, 30대에, 40대에. 63세의 리버모어에게 그 에너지는 남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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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왜 그는 멈추지 못했는가
리버모어의 네 번의 파산은 투자의 교훈이기도 하지만, 더 깊게 보면 중독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는 투기에 중독돼 있었다. 시장의 패턴을 읽고, 방향에 베팅하고, 옳았을 때의 쾌감. 그 쾌감이 그를 시장에 묶어뒀다. 1억 달러를 벌었을 때 은퇴했어야 했다. 300만 달러를 벌었을 때도 은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못했다.
이것은 도박 중독과 같은 구조다. 이기면 더 하고 싶고, 지면 만회하고 싶다. 어느 쪽이든 멈출 이유가 없다.
리버모어 자신이 이것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있다. 그가 책에 쓴 한 문장.
"투기꾼의 가장 큰 적은 무지가 아니다. 희망이다. 희망은 투기꾼이 손절하지 못하게 만드는 유일한 감정이다. 그리고 희망은 투기꾼이 은퇴하지 못하게 만드는 유일한 감정이기도 하다."
그는 자기 적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알면서도 이기지 못했다. 왜?
첫째, 정체성. 리버모어에게 투기는 직업이 아니라 정체성이었다. 그는 14세부터 투기꾼이었다. 다른 삶을 살아본 적이 없었다. 투기를 그만두면, 그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답이 없었다.
둘째, 관계의 부재. 그에게는 멈추라고 말해줄 파트너가 없었다. 버핏에게 멍거가 있었듯이, 소로스에게 드러켄밀러가 있었듯이. 리버모어는 혼자였다. 아내들과의 관계는 불안정했고, 친구는 대부분 돈 관계였고, 자녀와도 가까이 있지 않았다.
셋째, 시대의 한계. 1930-40년대에는 "투기 중독"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도박 중독에 대한 심리학적 이해도 거의 없었다. 리버모어가 오늘날 태어났다면, 누군가가 그에게 행동 중독 치료를 권했을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시대에는 그런 도움이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시장이 반복한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나 자신이 반복한다는 것도 안다. 다만, 아는 것과 멈추는 것은 다른 문제다." — 제시 리버모어
9. 이 일화가 우리에게 남긴 세 가지 교훈
첫째,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면 의지가 아니라 시스템으로 막아라
리버모어는 자기 실수의 패턴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책에 적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반복했다. 이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구조의 문제다. 당신이 같은 투자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면(손절 못 함, 레버리지 과다, FOMO), 의지로 해결하려 하지 마라. 시스템을 만들어라. 자동 손절 주문. 레버리지 한도. 매수 전 24시간 냉각 기간. 의지는 흔들리지만 시스템은 흔들리지 않는다.
둘째, 투자가 정체성이 되면 위험하다
리버모어에게 투기는 삶 자체였다. 투기를 빼면 그에게 남는 것이 없었다. 이것이 그가 멈추지 못한 근본 이유였다. 당신의 투자가 당신의 정체성이 되고 있다면 위험 신호다. 버핏은 투자 외에 가족, 자선, 독서, 친구가 있었다. 멍거도 마찬가지였다. 린치는 46세에 투자 밖의 삶을 선택했다. 투자는 당신 삶의 한 부분이어야지 전부가 되면 안 된다.
셋째, 혼자 하는 투자가 가장 위험하다
리버모어에게는 파트너가 없었다. "바보 같은 생각이야"라고 말해줄 사람이 없었다. 모든 결정을 혼자 했다. 이것이 그의 과신을 통제할 수 없게 만든 구조적 원인이었다. 당신의 투자 결정에 반대 의견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없다면, 최소한 자기 자신에게 반대 의견을 물어보는 습관이라도 만들어라. 멍거의 역전 사고. "이 투자가 실패할 수 있는 이유 세 가지는?" 이 질문을 매번 던지는 것만으로도 리버모어의 실수 중 상당수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10. 1940년 가을
1940년 11월. 63세의 제시 리버모어. 그의 인생을 숫자로 보면 이렇다.
- 14세에 5달러로 시작.
- 16세에 1만 달러.
- 30세에 300만 달러. 첫 번째 파산. 0.
- 35세에 다시 수백만 달러. 두 번째 파산. 마이너스 100만 달러.
- 42세에 다시 수백만 달러.
- 52세에 1억 달러. 세 번째 파산. 8만 4,000달러.
- 58세에 다시 수십만 달러.
- 63세. 네 번째 파산이 다가오고 있었다.
올라가고, 무너지고, 다시 올라가고, 다시 무너지고. 49년간의 사이클. 진폭은 점점 커졌고, 회복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돌아올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1940년 11월 말. 리버모어는 뉴욕의 한 호텔에 머물고 있었다. 그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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