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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L STREET STORIES버핏 연대기 EP.6
워런 버핏

벤저민 그레이엄이 버핏의 무급 입사를 거절한 이유

1951년 봄, 컬럼비아 비즈니스스쿨을 수석 졸업한 청년이 자기가 가장 존경하는 스승에게 무급으로 일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스승은 거절했다. 이것은 워런 버핏이 인생에서 가장 깊은 좌절을 맛본 날의 기록이다.

2026년 4월 17일·13분 읽기
워런 버핏
벤저민 그레이엄이 버핏의 무급 입사를 거절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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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세기 가장 유명한 경제학 수업

1950년 가을, 뉴욕 컬럼비아 비즈니스스쿨의 한 강의실.

교단에 선 남자는 56세의 교수였다. 안경을 썼고, 차림새는 수수했으며, 말은 조용하고 정확했다. 그는 자기가 20세기 투자 이론의 기반을 바꿔놓을 사람이라는 것을 그다지 드러내지 않았다.

이름은 벤저민 그레이엄(Benjamin Graham).

그는 1934년 『증권 분석(Security Analysis)』을 출간했다. 1949년에는 『현명한 투자자(The Intelligent Investor)』를 냈다. 이 두 권이 가치투자의 경전이 됐다. 월스트리트에서 그는 단순한 교수가 아니었다. 업계의 사상적 원류였다.

그의 수업은 전설이었다. 그레이엄은 매 수업 시간에 실제 상장 기업의 재무제표를 가져왔다. 학생들에게 회사 이름을 가리고 숫자만 보여줬다. "이 회사에 투자하시겠습니까?" 학생들이 분석하고 토론하면, 그는 마지막에 회사 이름을 공개했다.

이 수업의 한 학생이 있었다. 키는 평균, 체격은 마른 편, 네브래스카 오마하에서 온 20세 청년. 이름은 워런 버핏이었다.

버핏은 수업 첫날부터 달랐다. 그레이엄이 재무제표를 띄우는 순간, 버핏의 손이 올라갔다. 그는 숫자를 다 외우고 있었다. 회사 이름을 가렸지만 업종, 규모, 수치를 보고 이미 어떤 회사인지 맞혔다. 그리고 그레이엄의 질문에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답했다.

그레이엄은 그해 두 명의 학생에게만 A+를 줬다. 그중 한 명이 버핏이었다. 그레이엄이 컬럼비아에서 학생에게 A+를 준 것은 몇 년 만이었다.

버핏은 그 수업에서 자기 인생을 발견했다.

2. 그는 이미 부자였다

1951년 봄, 버핏이 졸업할 무렵 그의 상황을 보자.

나이: 20세
순자산: 약 19,738달러 (2025년 가치로 약 24만 달러)
투자 경험: 11세부터 시작. 9년차.
학력: 네브래스카 대학 졸업 후 컬럼비아 MBA 수석 졸업.

이 청년은 월스트리트의 누구보다 빠르게 출발한 상태였다. 어느 증권사든 그를 채용하고 싶어했다. 연봉도 괜찮게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월스트리트 신입 애널리스트 연봉은 약 1만 달러. 버핏의 학점과 이력이면 그 이상을 부를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는 이상한 결심을 했다.

그는 한 회사에서만 일하고 싶었다. 그레이엄-뉴먼(Graham-Newman Corporation). 벤저민 그레이엄이 파트너로 있는 뉴욕의 작은 투자회사였다.

버핏이 그레이엄에게 편지를 썼다.

"선생님 밑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연봉은 받지 않아도 됩니다. 무급으로 일하겠습니다."

20세기 가장 재능 있는 투자자 중 한 명이, 자기가 가장 존경하는 스승에게, 돈을 받지 않고 일하게 해달라고 부탁한 순간이었다.

그레이엄의 답장은 짧았다.

"미안하지만 안 되네."

3. 왜 그레이엄은 거절했나

당시 그레이엄-뉴먼에는 채용 원칙 하나가 있었다.

유대인만 채용한다.

이것은 인종주의가 아니었다. 정확히 그 반대였다.

1950년대 월스트리트는 노골적으로 반유대주의적이었다. 대형 투자은행들, 주요 로펌들, 명문 클럽들. 대부분이 유대인을 배제했다. 유대인 출신 금융인들은 일류 회사에 취업하기 어려웠다. 그레이엄 자신도 유대인이었고, 그는 평생 이 차별을 경험했다.

그래서 그는 자기 회사에서 규칙을 뒤집었다. 유대인이 갈 곳이 없다면, 그레이엄-뉴먼이 그들의 자리가 되어야 한다. 이 원칙은 도덕적 선언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 원칙을 어떤 이유로도 어기지 않았다.

버핏은 유대인이 아니었다. 그는 네브래스카 출신의 감리교 가정에서 자란 청년이었다. 그래서 그레이엄은 그를 채용할 수 없었다.

설령 그가 천재여도. 설령 그가 무급을 제안해도.

버핏은 나중에 이 이유를 알게 됐다. 그러나 당시에는 구체적인 이유를 듣지 못했다. 그는 그저 거절당했다는 사실만 알았다. 자기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에게. 돈을 받지 않겠다고까지 했는데.

"나는 그에게 무급으로 일하겠다고 했다. 그런데도 그는 내가 너무 비싸다고 했다."

훗날 버핏이 이 순간을 회고하며 남긴 말이다. 그 한 문장에 담긴 감정이 있다.

4. 오마하로 돌아가다

거절당한 뒤, 버핏은 어떻게 했을까.

그는 오마하로 돌아갔다. 아버지 하워드 버핏(Howard Buffett)이 운영하는 작은 증권사 버핏-포크(Buffett-Falk & Co.)에 들어갔다. 연봉은 받았다. 그러나 그가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다.

그는 오마하에서 계속 일했다. 고객에게 주식을 추천하는 영업이었다. 그는 이 일을 싫어했다. 그의 추천이 틀리면 고객이 돈을 잃는다. 그의 추천이 맞아도 고객은 너무 일찍 팔거나 너무 늦게 산다. 그의 통제 밖이었다.

이 시기 버핏은 두 가지 일을 병행했다.

첫째, 자기 돈을 굴렸다. 그는 매일 밤 무디스 매뉴얼(Moody's Manual)을 읽었다. 이 매뉴얼에는 미국의 모든 상장기업 재무제표가 실려 있었다. 버핏은 A부터 Z까지 한 페이지씩 읽어 내려갔다. 싼 주식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가 좋아한 표현. "1달러짜리 지폐를 40센트에 사는 것."

둘째, 그레이엄에게 계속 편지를 보냈다. 자기가 발견한 싼 주식에 대한 분석. 그레이엄이 과거에 언급했던 기업들의 후속 분석. 새로운 투자 아이디어.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그저 편지를 썼다. 그레이엄은 대부분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가끔 짧게 답했다.

그렇게 5년이 지났다.

5. 1954년의 전화

1954년 8월, 버핏이 오마하의 자기 집에 있을 때 전화가 울렸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벤저민 그레이엄이었다.

"버핏, 지금도 뉴욕에 올 생각이 있나?"

5년 전 거절했던 스승이, 이번에는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 버핏이 5년 동안 보낸 편지와 분석을 그레이엄은 다 읽고 있었다. 그레이엄-뉴먼의 직원 한 명이 떠났다. 자리가 비었다. 그레이엄은 그 자리에 버핏을 앉히기로 했다.

연봉은 1만 2천 달러. 당시로서는 훌륭한 금액이었다. 5년 전 버핏이 "무급으로 일하겠다"고 했던 그 자리에.

버핏은 통화 3일 뒤 뉴욕으로 떠났다. 아내 수지(Susie)와 함께. 그는 수지에게 말했다. "이제 일이 시작된다."

그 후 18개월 동안, 버핏은 그레이엄-뉴먼에서 일했다. 책상은 그레이엄의 옆방. 매일 아침 스승과 투자 아이디어를 논했다. 모든 거래를 분석했다. 그레이엄의 사고방식을 통째로 흡수했다.

그리고 18개월 뒤, 그레이엄이 은퇴를 발표했다.

6. 스승의 선물

1956년 봄, 그레이엄은 62세였다. 그는 자기 회사를 닫고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월스트리트에서 최고의 명성을 가진 투자회사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는 회사를 누구에게도 물려주지 않았다.

그는 투자자들의 돈을 돌려주기로 했다. 고객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저는 이제 은퇴합니다. 여러분의 자금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젊은 사람을 몇 명 추천드립니다."

편지 말미에 세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워런 버핏이었다. 그레이엄이 직접 추천한, 자기 투자 철학의 후계자.

버핏은 오마하로 돌아갔다. 그리고 1956년 5월 1일, 친척과 친구들에게서 모은 자금 10만 5,100달러로 첫 투자조합을 출범시켰다. 이름은 버핏 어소시에이츠(Buffett Associates, Ltd.). 훗날 버크셔 해서웨이의 시작이 된 조합이다.

그레이엄의 편지를 받은 고객 중 몇 명은 버핏에게 자금을 맡겼다. 오마하의 스무 살 중반 청년에게. 그 청년은 그때 이미 그레이엄의 이름을 등에 지고 있었다.

7. 5년 전 거절이 의미한 것

돌이켜보면, 1951년의 거절은 버핏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였다.

만약 그레이엄이 그때 버핏을 고용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버핏은 그레이엄-뉴먼의 애널리스트로 일했을 것이다. 좋은 월급을 받고, 뉴욕에 정착하고, 스승 밑에서 오래 일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훌륭한 투자자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오마하의 버핏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거절당한 5년 동안 버핏은 세 가지를 얻었다.

첫째, 독립적으로 투자 아이디어를 만드는 훈련. 스승이 옆에 없으니 스스로 찾아야 했다. 이 시기 그는 수많은 작은 회사들을 직접 발굴했다. 스승의 방법론을 적용하되, 스승이 보지 못한 곳에서.

둘째, 오마하라는 근거지. 뉴욕의 소음에서 벗어나 사고할 수 있는 공간. 훗날 그가 평생 강조한 원칙, "시장의 소음에서 거리를 두라"는 그의 공간적 선택이기도 했다. 만약 그가 1951년에 뉴욕에 정착했다면, 이 거리감은 없었을 것이다.

셋째, 인내라는 자산. 5년을 기다린 사람이, 36년을 기다리는 것도 가능하다. 코카콜라를 36년 보유한 버핏의 시간 감각은, 이 5년에서 시작됐을 수 있다.

거절은 실패가 아니었다. 거절은 더 긴 길의 시작이었다.

1951년 봄. 당신이 20세의 버핏이다. 당신은 가장 존경하는 스승에게 무급으로 일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거절당했다. 당신은 월스트리트의 다른 회사에 들어갈 수 있다. 연봉도 많다. 그러나 그 자리는 당신이 원하던 자리가 아니다.

8. 이 일화가 우리에게 남긴 세 가지 교훈

첫째, 거절은 당신에 대한 평가가 아닐 수 있다. 그레이엄이 버핏을 거절한 것은 버핏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회사의 다른 원칙 때문이었다. 버핏은 이 사실을 오랫동안 몰랐지만, 그럼에도 스승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았다. 인생에서 받는 거절의 절반은 당신의 실력과 무관하다. 타이밍, 상대방의 사정, 보이지 않는 제약. 거절을 자기 부정으로 받아들이면 다음 기회를 놓친다. 거절은 "지금은 아니다"라는 뜻일 뿐, "당신은 아니다"라는 뜻이 아니다.

둘째, 기다리는 동안 무엇을 하느냐가 전부다. 버핏의 5년은 수동적 기다림이 아니었다. 그는 매일 무디스 매뉴얼을 읽었고, 실전 투자를 했고, 스승에게 편지를 보냈다. 기다림의 품질이 결과를 결정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기회를 놓치면 좌절하고 멈춘다. 극소수는 기다리면서도 준비를 계속한다. 5년 뒤 기회가 다시 왔을 때 준비된 사람만이 그 기회를 받을 수 있다. 기다림은 기술이다. 그리고 이 기술은 훈련된다.

셋째, 관계는 거절 이후에 더 중요해진다. 버핏이 5년간 그레이엄에게 편지를 계속 보내지 않았다면, 1954년의 전화는 없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거절당하면 관계를 끊는다. 자존심이 상해서. 불편해서. 그러나 진짜 기회는 거절 이후에 유지된 관계에서 온다. 일방적으로 보이더라도, 답장이 없더라도, 당신이 가치 있다고 믿는 사람과의 연결은 유지하라. 5년, 10년 뒤 어떤 전화가 걸려올지 당신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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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스승과 제자

그레이엄은 1976년 82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기 전, 버핏은 그레이엄을 인생의 세 스승 중 한 명으로 꼽았다. 아버지 하워드 버핏, 벤저민 그레이엄, 그리고 찰리 멍거(Charlie Munger).

그레이엄의 장례식에서 버핏은 추도사를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벤저민 그레이엄은 내가 만난 가장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나에게 투자를 가르쳐준 것이 아니다. 그는 나에게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쳐줬다."

버핏이 평생 사용한 가장 유명한 비유 하나가 있다. "Mr. Market" (시장이라는 이름의 조증-우울증 환자). 매일 당신에게 주식을 사거나 팔자고 제안하지만, 어떤 날은 비이성적으로 비싸게, 어떤 날은 비이성적으로 싸게 부르는 이웃. 이 비유는 그레이엄이 만들었다. 『현명한 투자자』 8장에 나온다.

버핏은 이 비유를 60년 넘게 인용했다. 그가 주주서한을 쓸 때, 인터뷰를 할 때, 강연을 할 때. 매번 "Mr. Market이 말하길..."로 시작했다. 스승이 죽고 50년이 지나도.

2025년, 94세가 된 버핏이 자기 은퇴를 발표했다. 후계자 그렉 아벨에게 넘기는 자리. 그 자리에서 그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벤이 나를 가르쳤듯이, 나도 누군가에게 가르쳤기를 바란다."

1951년에 거절당한 청년이.

74년 뒤, 자기가 스승이 되어 그 자리를 떠나는 중이다.


자료 출처
Alice Schroeder, 『The Snowball: Warren Buffett and the Business of Life』 (2008)
Roger Lowenstein, 『Buffett: The Making of an American Capitalist』 (1995)
Benjamin Graham, 『The Intelligent Investor』 (1949)
Warren Buffett, "The Superinvestors of Graham-and-Doddsville" (1984 연설)
Berkshire Hathaway Annual Letter (2015, 그레이엄 회고)

당신 vs 대중 vs 거장
1951년
무급 제안 거절 — "그는 내가 너무 비싸다고 했다"
1954년
스승이 먼저 전화 — 연봉 $12,000
1956년~2025년
거절당한 청년 → 74년 뒤 자기가 스승이 되어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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