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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L STREET STORIES찰리 멍거 3부작 EP.1
찰리 멍거

나쁜 회사를 싸게 사지 마라

1972년 초, 워런 버핏 앞에 씨즈 캔디 인수 기회가 왔다. 순유형자산 800만 달러짜리 회사를 2,500만 달러에 사야 했다. 스승 그레이엄이라면 절대 거절했을 가격. 버핏이 포기하려는 순간, 옆에 있던 찰리 멍거가 말했다. "워런, 자산이 중요한 게 아니야. 이 회사의 진짜 자산은 대차대조표에 없어." 그 한 마디가 2,500만 달러를 35년간 13억 5,000만 달러로 바꿨다.

2026년 4월 20일·12분 읽기
찰리 멍거
나쁜 회사를 싸게 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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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회사를 싸게 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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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워런 버핏은 캘리포니아의 작은 사탕 회사를 인수하려 했다. 가격이 너무 비쌌다. 그의 스승 벤저민 그레이엄이라면 절대 사지 않을 가격이었다. 버핏은 포기하려 했다. 그때 옆에 있던 남자가 말했다. "워런, 적당한 회사를 좋은 가격에 사는 건 그만해. 좋은 회사를 적당한 가격에 사." 이것은 찰리 멍거가 미국 투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한 마디를 한 날의 기록이다.

1. 오마하의 변호사

찰리 멍거는 1924년 1월 1일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태어났다. 버핏과 같은 도시였다. 더 놀라운 것은, 멍거가 10대 시절 버핏의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식료품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직접 만난 것은 훨씬 나중이었다.

멍거는 미시간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2차 대전이 터지자 육군 항공대에 입대해 기상학을 공부했다. 전쟁이 끝난 뒤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했다. 학부 졸업장 없이. 하버드는 예외적으로 그를 받아들였다. 전쟁 참전 경력과 뛰어난 시험 성적 때문이었다.

1948년 로스쿨을 졸업한 뒤 그는 캘리포니아로 갔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부동산법과 기업법을 전문으로 했다. 좋은 변호사였지만 위대한 변호사는 아니었다. 그가 훗날 한 말.

"변호사 일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남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내 돈을 굴리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1959년, 멍거는 오마하를 방문했다. 아버지의 장례식이었다. 그 자리에서 공통 지인이 그를 한 사람에게 소개했다. 워런 버핏. 당시 버핏은 29세, 멍거는 35세였다.

두 사람은 첫 저녁 식사에서 몇 시간을 이야기했다. 투자, 사업, 인생, 책. 버핏은 훗날 이 만남을 이렇게 회고했다.

"찰리는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넓은 범위의 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의견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변호사였지만 변호사의 사고방식이 아니었다. 그는 생각하는 기계였다."

멍거도 버핏에 대해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버핏은 내가 만난 가장 빠른 두뇌였다. 숫자를 보는 속도가 비정상적이었다."

두 사람은 그날 이후 매주 전화를 했다. 로스앤젤레스와 오마하 사이. 장거리 전화 요금이 매달 수백 달러였다. 1950년대 말의 수백 달러는 적은 돈이 아니었다.

2. 멍거의 투자 스타일

1960년대, 멍거는 변호사 일을 하면서 동시에 투자를 시작했다. 자기 돈과 친구들의 돈을 모아 휠러, 멍거 앤 컴퍼니(Wheeler, Munger & Company)라는 투자조합을 만들었다. 1962년의 일이었다.

그의 초기 투자 스타일은 버핏과 비슷했다. 벤저민 그레이엄 방식. 싼 주식을 사는 것. 자산 가치 대비 주가가 낮은 회사를 찾아 매수하고, 시장이 가치를 인정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 버핏이 "시가 꽁초(cigar butt) 투자"라고 부른 방식이었다.

그러나 멍거는 이 방식에 점점 불만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싼 주식은 싼 이유가 있었다. 사업이 나쁘거나, 경영진이 무능하거나, 산업이 사양하거나. 싸게 사서 약간의 차익을 남기고 팔 수는 있었지만, 그 회사가 10배, 20배로 성장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한 모금의 시가 꽁초를 피울 수는 있지만, 그 시가가 쿠바산 명품 시가가 되지는 않았다.

멍거는 다른 것을 보기 시작했다. 좋은 회사. 사업 자체가 훌륭한 회사. 경쟁우위가 뚜렷한 회사. 경영진이 유능한 회사. 이런 회사는 주가가 "싸지" 않았다. 그레이엄 기준으로 보면 비쌌다. 그러나 멍거는 생각했다.

"비싸 보이는 가격이 사실은 싼 것일 수 있다. 좋은 회사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10년, 20년 뒤를 보면, 적당한 가격에 산 좋은 회사가 싸게 산 나쁜 회사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어다 준다."

이 생각은 버핏의 스승 그레이엄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그레이엄은 "가격이 가치보다 충분히 낮을 때만 사라"고 가르쳤다. 멍거는 "가치가 충분히 높은 회사라면 적당한 가격에 사도 된다"고 말한 것이다.

버핏은 멍거의 이 생각을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레이엄이 그의 스승이었고, 그레이엄의 방법론으로 이미 큰 돈을 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72년, 한 회사가 나타났다.

3. 씨즈 캔디

1972년 초, 버핏과 멍거 앞에 한 인수 기회가 왔다. 캘리포니아의 사탕 회사 씨즈 캔디(See's Candies).

씨즈 캔디는 1921년에 설립된 프리미엄 초콜릿·사탕 회사였다. 캘리포니아와 서부 지역에서 강한 브랜드를 가지고 있었다. 크리스마스와 발렌타인데이 시즌에 매출이 집중됐다. 고객 충성도가 매우 높았다. 캘리포니아 사람들에게 "씨즈 캔디"는 단순한 사탕이 아니라 선물의 대명사였다.

매도 측이 부른 가격: 3,000만 달러.

버핏이 숫자를 봤다. 씨즈의 순유형자산(tangible net assets)은 약 800만 달러. 세전 이익은 약 400만 달러. 즉, 매도 측은 순자산의 약 3.75배, 세전 이익의 약 7.5배를 부르고 있었다.

그레이엄 기준으로 보면 이 가격은 비쌌다. 그레이엄은 순자산 이하로 사는 것을 선호했다. 800만 달러 자산의 회사를 3,000만 달러에 사는 것은 그레이엄 방식의 정반대였다.

버핏은 망설였다. 그가 버크셔 부회장 릭 게린(Rick Guerin)에게 한 말.

"2,500만 달러까지라면 살 수 있다. 3,000만 달러는 너무 비싸."

이때 멍거가 개입했다.

4. 그 한 마디

멍거가 버핏에게 말했다.

"워런, 이 회사를 봐. 브랜드 충성도가 엄청나다. 캘리포니아에서 씨즈 캔디를 모르는 사람이 없어. 매년 가격을 올려도 고객이 떠나지 않아. 이건 해자(moat)가 있는 회사야."

버핏이 반박했다. "순자산이 800만인 회사를 3,000만에 사면 자산 대비 너무 비싸."

멍거가 말했다.

"자산이 중요한 게 아니야. 이 회사의 진짜 자산은 대차대조표에 안 나와. 브랜드야. 고객의 습관이야. 매년 가격을 올려도 매출이 줄지 않는 그 힘이야. 그게 800만 달러가 아니라 3억 달러의 가치가 있어."

그리고 그가 결정적인 한 마디를 했다.

"워런, 적당한 회사를 좋은 가격에 사는 건 그만해. 좋은 회사를 적당한 가격에 사."
"Forget what you know about buying fair businesses at wonderful prices; instead, buy wonderful businesses at fair prices."

이 한 문장이 워런 버핏의 투자 철학을 바꿨다.

버핏은 오랫동안 이 말을 곱씹었다. 그리고 동의했다. 씨즈 캔디를 2,500만 달러에 사기로 했다. 매도 측이 3,000만에서 양보했다.

1972년, 버크셔 해서웨이가 씨즈 캔디를 2,500만 달러에 인수했다.

5. 2,500만 달러가 만든 기적

씨즈 캔디 인수 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멍거의 예측이 정확했다. 씨즈의 브랜드 파워는 매년 가격을 올려도 고객이 떠나지 않는 구조를 만들었다. 1972년 파운드당 1.95달러였던 사탕 가격은 2007년에 파운드당 11.85달러가 됐다. 35년 동안 6배. 그리고 판매량은 줄지 않았다.

이것이 멍거가 말한 "해자"의 실제 작동이었다. 가격을 올려도 고객이 떠나지 않는 회사. 경쟁사가 따라올 수 없는 브랜드. 이런 회사는 매년 더 많은 현금을 뽑아내는 기계와 같다.

숫자를 보자.

  • 1972년 인수 가격: 2,500만 달러
  • 1972년 세전 이익: 400만 달러
  • 2007년 세전 이익: 약 8,200만 달러
  • 1972-2007년 누적 세전 이익: 약 13억 5,000만 달러

2,500만 달러를 투자해서 35년간 13억 5,000만 달러의 현금을 뽑아냈다. 투자금의 54배를 현금으로 회수한 것이다. 그리고 회사의 가치는 여전히 수억 달러에 달했다.

버핏은 2007년 주주서한에서 씨즈 캔디에 대해 이렇게 썼다.

"씨즈 캔디를 인수한 것이 제 투자 인생의 전환점이었습니다. 찰리가 없었다면 저는 아직도 시가 꽁초를 주워 피우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씨즈에서 배운 교훈이 코카콜라 매수로 이어졌습니다. 코카콜라도 씨즈와 같은 종류의 회사입니다. 브랜드가 해자이고, 가격 결정력이 무기인 회사."

1988년 코카콜라 10억 달러 매수. 그것은 1972년 씨즈 캔디 2,500만 달러에서 시작된 사고방식의 확장이었다. 멍거의 한 마디가 16년 뒤 10억 달러 베팅으로 이어진 것이다.

6. 왜 멍거는 버핏과 달랐는가

같은 오마하 출신. 같은 투자자. 같은 가치 투자 계보. 그런데 왜 멍거는 그레이엄의 방법을 넘어서고, 버핏은 멍거를 만나기 전까지 넘어서지 못했는가.

답은 멍거의 독서 습관에 있었다.

버핏은 재무제표를 읽었다. 숫자를 읽었다. 무디스 매뉴얼을 A부터 Z까지 읽었다. 그의 독서는 투자에 집중돼 있었다.

멍거는 모든 것을 읽었다. 물리학, 생물학, 심리학, 역사, 법학, 경제학, 수학. 그는 자기 서재에 수천 권의 책을 쌓아두고, 매일 몇 시간씩 읽었다. 가족들은 그를 "책에 다리가 달린 사람(a book with legs)"이라고 불렀다.

이 다학제적 독서가 그의 투자 사고방식을 넓혔다. 그레이엄이 가르친 것은 "회계적 가치 분석"이었다. 대차대조표를 보고 자산 가치를 계산하는 방법. 이 방법은 숫자에 잡히는 것만 본다.

멍거는 숫자에 안 잡히는 것을 봤다. 브랜드. 고객의 심리. 경쟁 구조. 경영자의 자질. 이런 것들은 재무제표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회사의 장기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이런 무형 자산이었다.

그가 이 통찰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심리학(소비자 행동), 생물학(경쟁과 적응), 물리학(복리와 비선형성)을 동시에 읽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망치만 가지고 있으면, 모든 문제가 못으로 보인다."

멍거가 평생 반복한 말이다. 그레이엄의 방법론은 훌륭한 망치였다. 그러나 세상에는 못이 아닌 문제도 있었다. 멍거는 망치 외에 드라이버, 펜치, 톱을 동시에 들고 다닌 사람이었다.

7. 파트너십의 구조

버핏과 멍거의 파트너십은 월스트리트에서 가장 독특한 관계 중 하나였다.

형식적으로 멍거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부회장(Vice Chairman)이었다. 그러나 그는 오마하에 살지 않았다. 로스앤젤레스에 살았다. 평생. 그는 버크셔 본사에 출근하지 않았다. 자기 서재에서 책을 읽고 전화로 버핏과 대화했다.

두 사람의 일과는 이랬다. 버핏이 투자 아이디어를 가지고 멍거에게 전화한다. 멍거가 15분 동안 듣는다. 그리고 세 가지 반응 중 하나를 보인다.

  • "좋은 생각이야." (드물었다.)
  • "그건 바보 같은 생각이야." (자주 있었다.)
  • "더 생각해 봐야 해." (가장 많았다.)

버핏은 멍거의 "바보 같은 생각"이라는 반응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환영했다. 그가 주주서한에 쓴 것.

"찰리의 가장 큰 가치는 그가 나에게 '안 돼'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나를 둘러싼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한다. 찰리는 내가 들어야 하는 말을 한다."

멍거 쪽에서 본 관계도 비슷했다.

"워런은 내가 만난 가장 빠른 학습자다. 그에게 아이디어를 주면, 그는 그 아이디어를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멀리 밀어붙인다. 씨즈 캔디가 그랬다. 내가 '좋은 회사를 적당하게 사라'고 했을 때, 그는 그 원칙을 코카콜라,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무디스까지 확장했다. 내 아이디어를 버핏에게 주면, 그것은 더 이상 내 아이디어가 아니게 된다."

1972년 초. 당신이 워런 버핏이다. 씨즈 캔디를 인수할 기회가 왔다. 순유형자산 800만 달러인 회사를 2,500만 달러에 사야 한다. 당신의 스승 그레이엄이라면 절대 사지 않을 가격이다. 그런데 파트너 멍거가 "이 회사의 진짜 자산은 대차대조표에 없다"고 말한다.

8. 멍거 없는 버핏은 어떤 투자자였을까

이것은 투자 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반사실적 질문 중 하나다.

만약 1959년에 두 사람이 만나지 않았다면. 만약 멍거가 1972년에 "좋은 회사를 적당하게 사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버핏은 아마 계속 그레이엄 방식으로 투자했을 것이다. 싼 주식을 사서, 가치가 회복되면 팔고, 다음 싼 주식을 찾는 방식. 좋은 수익을 냈을 것이다. 그러나 코카콜라를 36년 보유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씨즈 캔디를 사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버핏 본인이 이 질문에 답한 적이 있다.

"찰리가 없었다면 나는 훨씬 가난했을 것이다. 돈의 의미가 아니라, 사고의 의미에서."

멍거도 비슷한 말을 했다.

"버핏이 없었다면 나는 좋은 변호사로 남았을 것이다. 그런데 버핏은 나 없이도 위대한 투자자가 됐을 것이다. 다만 다른 종류의 위대함이었을 것이다."

이 겸손이 두 사람의 파트너십이 60년간 유지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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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이 일화가 우리에게 남긴 세 가지 교훈

첫째, "싸다"는 것이 "좋다"는 뜻은 아니다.

한국 개인투자자의 가장 흔한 실수 중 하나가 "PER이 낮으니까 싸다", "PBR이 1 이하니까 저평가다"라는 판단이다. 그레이엄도 이렇게 가르쳤다. 그러나 멍거는 반대를 말했다. 싼 주식은 싼 이유가 있다. 진짜 물어야 할 질문은 "이 회사가 싼가"가 아니라 "이 회사가 좋은가"다. 좋은 회사란 무엇인가. 경쟁우위가 명확하고, 가격 결정력이 있고, 경영진이 유능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올라가는 회사다. 이런 회사를 적당한 가격에 사면, 시간이 당신 편에서 일한다.

둘째, 파트너의 가치는 동의가 아니라 반대에 있다.

멍거가 버핏에게 준 가장 큰 가치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안 돼"라고 말해준 것이었다. 대부분의 투자자는 자기 판단을 확인해줄 사람을 찾는다. 그러나 진짜 필요한 것은 자기 판단에 "바보 같은 생각이야"라고 말해줄 사람이다. 당신의 투자 결정에 반대 의견을 말해줄 사람이 있는가. 없다면, 당신은 에코 챔버 안에서 투자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셋째, 투자 철학은 진화해야 한다.

버핏은 1951년 그레이엄에게 배웠고, 1972년 멍거에게 배웠다. 같은 사람이 21년 만에 투자 철학을 바꾼 것이다. 가장 위험한 투자자는 "나는 내 방법을 안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시장은 변하고, 경제는 변하고, 세상은 변한다. 그레이엄의 방법이 1930-1950년대에는 최적이었지만, 1970년대 이후에는 멍거의 방법이 더 효과적이었다. 당신의 투자 방법이 10년 전과 동일하다면, 그것은 일관성이 아니라 경직일 수 있다.

당신 vs 대중 vs 거장
그레이엄 방식
순자산 가치 이하로 매수, 가치 회복 시 매도 (시가 꽁초)
멍거 방식
경제적 해자가 있는 좋은 회사를 적당한 가격에 매수, 장기 보유
씨즈 캔디 인수가
2,500만 달러 (1972년)
씨즈 순유형자산
800만 달러 (그레이엄 기준 3.75배 비쌈)
35년 누적 세전 이익
13억 5,000만 달러 (54배 회수)
52년 누적 세전 이익
약 20억 달러 이상 (80배)
핵심 교훈
"비싸 보이는 좋은 회사가 싸 보이는 나쁜 회사보다 결국 더 싸다"

10. 씨즈의 현재

2024년 현재, 씨즈 캔디는 여전히 버크셔 해서웨이의 자회사다. 52년째.

1972년 인수 이후 지금까지 씨즈가 버크셔에 안겨준 누적 세전 이익은 약 20억 달러 이상으로 추정된다.

2,500만 달러 투자. 20억 달러 회수. 80배.

그리고 버핏은 이 돈을 다른 투자에 재투자했다. 씨즈에서 나온 현금이 코카콜라,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무디스, 애플 매수의 자금원이 됐다. 씨즈 캔디 하나에서 시작된 현금 흐름이 버크셔 해서웨이 제국의 연료가 된 것이다.

멍거는 2023년 11월 28일, 99세 생일을 33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가 떠난 뒤 버핏이 한 말.

"버크셔 해서웨이는 찰리 멍거 없이는 지금의 위치에 올 수 없었습니다."

1972년의 한 마디. 나쁜 회사를 싸게 사지 마라. 좋은 회사를 적당하게 사라.

이 한 마디가 2,500만 달러를 20억 달러로 만들었고, 한 투자자의 철학을 바꿨고, 미국 역사상 가장 큰 투자 제국의 방향을 결정했다.

그리고 그 한 마디를 한 사람은 오마하 출신의 변호사였다.


자료 출처: Alice Schroeder, 『The Snowball』(2008) / Janet Lowe, 『Damn Right!』(2000) / Tren Griffin, 『Charlie Munger: The Complete Investor』(2015) / Berkshire Hathaway Annual Letters / Charlie Munger, "A Lesson on Elementary, Worldly Wisdom"(1994 USC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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