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드 한 장의 세일즈맨
2006년, 도이체방크 트레이더 그렉 리프먼은 자기 회사가 파는 상품이 쓰레기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슬라이드 한 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월스트리트를 돌아다니며 공매도를 팔았다. 버리가 발명가였다면, 아이스만이 전도사였다면, 리프먼은 세일즈맨이었다.

슬라이드 한 장의 세일즈맨
2006년 봄, 도이체방크의 한 트레이더가 슬라이드 한 장을 만들었다. 그는 그 슬라이드를 프린트해서 가방에 넣고, 뉴욕과 런던과 코네티컷의 헤지펀드들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슬라이드의 내용은 간단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은 폭탄입니다. 저와 함께 보험을 드시겠습니까?" 이것은 그렉 리프먼이 자기 회사가 만들어 파는 상품을 자기가 공매도한 이야기다.
1. 도이체방크 트레이딩 플로어
그렉 리프먼은 1969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코네티컷 대학을 졸업한 뒤 월스트리트에 들어왔다. 크레디트 스위스를 거쳐 2000년에 도이체방크(Deutsche Bank)로 옮겼다.
그의 직책은 ABS(자산유동화증권) 트레이딩 데스크의 책임자. 구체적으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기초 자산으로 한 채권을 거래하는 일이었다. 그는 이 채권을 사고팔고, 고객에게 추천하고, 시장을 만드는 역할을 했다.
리프먼은 트레이딩 플로어에서 독특한 존재였다. 대부분의 트레이더가 숫자와 스크린에 집중하는 동안, 그는 큰 소리로 전화를 걸고 복도를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이야기했다. 에너지가 넘쳤고, 자기 의견을 숨기지 않았다. 동료들은 그를 좋아하거나 싫어했다. 중간은 없었다.
그가 싫어하는 사람들이 그를 부르는 별명이 있었다. "리프 더 립(Lipp the Lip)." 입이 가볍다는 뜻이었다. 그는 이 별명을 개의치 않았다.
2005년, 리프먼은 자기가 거래하는 상품의 기초 자산을 깊게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가 매일 사고파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 그 안에 묶인 대출의 실제 품질을.
그리고 그는 무언가를 봤다.
2. 자기 회사의 상품을 의심하다
리프먼이 본 것은 마이클 버리가 본 것과 같았다. 서브프라임 대출의 품질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었다.
2003-2004년까지는 서브프라임 대출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괜찮은" 대출이 있었다. 차주의 소득이 낮더라도 어느 정도 검증이 됐다. 그러나 2005년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대출 기관들이 시장 점유율을 늘리기 위해 심사 기준을 극단적으로 낮추기 시작한 것이다.
닌자 대출(NINJA loan)이라는 말이 업계에서 돌았다. No Income, No Job, No Assets. 소득 없음, 직업 없음, 자산 없음. 이런 사람에게도 대출이 나갔다.
리프먼은 이 대출들이 묶여서 채권이 되고, 그 채권이 CDO로 재포장되고, 신용평가사가 AAA를 찍는 과정을 매일 옆에서 봤다. 그는 이 과정의 참여자였다. 도이체방크도 이 채권을 만들어 팔고 있었다.
2005년 말, 리프먼은 자기 팀에서 분석을 시작했다. 최근 2-3년간 발행된 서브프라임 MBS의 기초 대출 데이터를 뽑았다. 연체율, FICO 점수 분포, LTV(주택담보인정비율), 소득 대비 부채 비율.
숫자가 끔찍했다.
2005-2006년에 발행된 대출의 품질이 이전 연도 대비 극적으로 나빠져 있었다. FICO 점수가 낮아졌고, LTV가 높아졌고, 소득 증명이 없는 대출의 비율이 치솟았다. 그리고 이 대출들의 초기 연체율이 이미 올라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리프먼은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내가 거래하고 있는 채권의 기초 자산은 쓰레기다."
3. 슬라이드 한 장
2006년 봄. 리프먼은 파워포인트 파일을 하나 만들었다.
슬라이드 수: 한 장.
그 한 장에는 차트 하나와 숫자 몇 개가 있었다. 내용은 이랬다.
2005-2006년에 발행된 서브프라임 MBS의 기초 대출 연체율 추이. 발행 후 6개월, 12개월, 18개월 시점의 연체율을 이전 연도 빈티지(vintage)와 비교한 차트. 2005-2006년 빈티지의 연체율이 이전 연도보다 2-3배 높았다.
그리고 차트 아래에 한 줄.
"이 채권에 대한 CDS를 사세요. 보험료는 연 1-2%. 이 채권이 디폴트 나면 100%를 돌려받습니다."
리스크 대비 수익 비율. 연 1-2%를 내고, 맞으면 100%를 받는다. 50:1 이상의 비대칭.
리프먼은 이 슬라이드를 프린트해서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뉴욕, 코네티컷, 런던의 헤지펀드들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의 피치는 간단했다. 헤지펀드 매니저의 사무실에 들어가서 슬라이드 한 장을 보여주고 이렇게 말했다.
"이 차트를 보세요. 2005-2006년에 발행된 서브프라임 대출이 이전보다 훨씬 나쁩니다. 연체율이 벌써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 대출이 묶인 채권은 2-3년 안에 터집니다. 지금 CDS를 사면 연 1-2% 보험료로 50배 이상의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헤지펀드 매니저는 그를 보고 웃었다.
"리프먼, 자네 도이체방크에서 이 채권을 파는 사람 아닌가? 자기 회사가 파는 상품이 쓰레기라고 말하는 건가?"
리프먼의 대답은 솔직했다.
"네. 그래서 제가 여기 있는 겁니다."
4. 자기 회사와의 전쟁
리프먼의 위치는 역설적이었다.
그는 도이체방크 직원이었다. 도이체방크는 서브프라임 MBS를 만들어 팔고 있었다. 은행의 한쪽 부서가 이 채권을 만들고, 다른 쪽 부서의 영업팀이 투자자들에게 팔고 있었다. 그런데 같은 은행의 트레이딩 데스크에 앉아 있는 리프먼이 외부 헤지펀드들에게 "이 채권을 공매도하세요"라고 말하고 다닌 것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가 있다.
첫째, 월스트리트의 구조적 칸막이(Chinese wall). 대형 투자은행 안에서 채권 발행 부서와 트레이딩 부서는 정보 장벽으로 분리돼 있다. 이론적으로는 서로의 활동에 개입하지 않는다. 리프먼은 트레이딩 부서에 있었기 때문에, 발행 부서가 뭘 하든 자기 판단에 따라 거래할 수 있었다.
둘째, 리프먼이 CDS를 팔면 도이체방크도 돈을 번다. 리프먼이 헤지펀드에 CDS를 사라고 설득하면, 도이체방크가 중간에서 수수료를 받았다. 은행은 CDS 거래의 중개자 역할을 했다. 리프먼의 영업 활동 자체는 은행에 수익을 가져다줬다.
셋째, 리프먼 자신도 CDS를 샀다. 그는 고객에게만 권한 게 아니었다. 도이체방크의 자기자본(proprietary) 계좌로 약 50억 달러 규모의 서브프라임 CDS를 매수했다. 자기 회사 돈으로, 자기 회사가 만든 상품에 반대 방향으로 베팅한 것이다.
도이체방크 내부에서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는 사람 중 일부는 불편해했다. "우리가 파는 상품을 우리 트레이더가 공매도하면, 고객이 알면 어떻게 되는 거야?"
리프먼의 상사는 이 포지션을 묵인했다. 리프먼의 트레이딩 데스크가 꾸준히 수익을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에서 돈을 버는 사람에게는 질문이 적다.
5. 그가 설득한 사람들
리프먼이 슬라이드 한 장을 들고 돌아다닌 기간은 약 1년이었다. 2006년 봄부터 2007년 초까지. 이 기간 동안 그는 수십 곳의 헤지펀드를 방문했다.
대부분은 거절했다. 이유는 비슷했다. "미국 주택값이 전국적으로 떨어진 적 없다." "서브프라임은 전체 모기지 시장의 작은 부분이다." "설사 문제가 있어도, 정부가 개입해서 해결할 것이다."
그러나 소수가 들었다.
스티브 아이스만(Steve Eisman)이 그중 한 명이었다. 리프먼이 프론트포인트 파트너스를 방문했을 때, 아이스만은 이미 서브프라임에 대한 의심을 갖고 있었다. 리프먼의 슬라이드가 아이스만에게 준 것은 새로운 분석이 아니었다. 거래 도구였다. "그래서 이걸 어떻게 베팅하지?"에 대한 답.
존 폴슨(John Paulson)도 리프먼의 피치를 들었다. 폴슨은 합병차익거래(merger arbitrage)를 전문으로 하는 헤지펀드 매니저였는데, 서브프라임 시장에는 관심이 없었다. 리프먼의 슬라이드를 보고 자기 팀에 독자적 리서치를 시작하게 했다. 그 리서치가 결국 2007-2008년 150억 달러 수익이라는 역사상 최대의 단일 연도 수익으로 이어졌다.
리프먼은 이런 식으로 서브프라임 CDS 시장을 혼자서 키웠다. 마이클 버리가 CDS 시장을 "만들었다면"(골드만삭스에 만들어 달라고 한 사람이 버리였으니), 리프먼은 CDS 시장을 "유통시킨" 사람이었다.
버리가 발명가라면 리프먼은 세일즈맨이었다.
6. 그는 왜 이렇게 했는가
리프먼의 동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해석 1: 그는 순수하게 돈을 벌고 싶었다.
리프먼은 이상주의자가 아니었다. 아이스만처럼 시스템의 부패에 분노한 것도, 버리처럼 데이터에 대한 지적 확신에 사로잡힌 것도 아니었다. 그는 트레이더였다. 그는 기회를 봤고, 그 기회에 베팅했고, 다른 사람들도 베팅하게 만들어서 수수료를 벌었다.
마이클 루이스는 『빅쇼트』에서 리프먼을 가장 복잡한 인물로 그렸다. 버리는 영웅이고 아이스만은 분노한 정의의 투사지만, 리프먼은 그 둘 다 아니었다. 그는 자기 이익을 위해 움직였다. 다만 그의 이익 추구가 결과적으로 시장의 진실을 드러내는 데 기여했다.
해석 2: 그는 진실을 말하고 싶었다.
리프먼 자신은 이 해석을 선호했다. 그가 훗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저는 매일 이 채권들을 거래하면서, 이게 쓰레기라는 걸 봤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두 가지였습니다. 입을 다물고 계속 파는 것. 아니면 진실을 말하고 돈도 버는 것. 저는 후자를 택했습니다."
어떤 해석이 맞는가. 아마 둘 다.
리프먼은 순수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순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에게 진실이 전달됐다. 버리가 혼자 사무실에서 CDS를 사고 있을 때, 리프먼은 발로 뛰며 수십 곳의 헤지펀드에 진실을 전파했다. 이상주의자 한 명보다 현실주의적 세일즈맨 한 명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클 수 있다.
7. 결과
2007-2008년, 서브프라임 시장이 붕괴했다.
리프먼의 50억 달러 CDS 포지션은 대규모 수익을 냈다. 도이체방크 내부에서 리프먼의 트레이딩 데스크는 2007년 한 해에만 약 15억 달러 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도이체방크 전체로 보면 이야기가 달랐다. 은행의 다른 부서들은 서브프라임 MBS를 대량 보유하고 있었다. 리프먼의 데스크가 15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동안, 다른 부서들은 그보다 훨씬 큰 손실을 입었다. 도이체방크 전체는 2008년 금융위기에서 큰 타격을 받았고, 2019년까지 주가가 회복되지 않았다.
리프먼의 개인 보너스는 2007년 약 4,700만 달러였다. 월스트리트 역사상 단일 연도 개인 보너스로 최대 수준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 보너스가 논란이 됐다. 자기 회사가 만든 상품이 투자자들에게 수십억 달러 손실을 입힌 바로 그 해에, 그 상품을 공매도한 직원이 4,700만 달러 보너스를 받은 것이다. 2010년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이 사실이 집중 추궁됐다.
상원의원이 물었다. "도이체방크가 고객에게 서브프라임 채권을 파는 동시에, 당신은 같은 채권을 공매도했습니다. 이것이 이해충돌이 아닙니까?"
리프먼이 대답했다. "저는 마켓메이커입니다. 마켓메이커는 양쪽에 서서 거래를 만드는 역할입니다. 제가 CDS를 사는 것은 제 분석에 기반한 것이고, 은행이 채권을 파는 것은 고객의 수요에 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해충돌이 아니라 시장의 구조입니다."
이 대답이 도덕적으로 충분한가에 대해서는 지금도 의견이 나뉜다.
2006년 봄. 당신이 그렉 리프먼이다. 당신은 도이체방크의 트레이더다. 매일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을 거래한다. 그런데 당신은 이 채권의 기초 자산이 쓰레기라는 것을 알게 됐다. 당신의 회사는 이 채권을 계속 만들어 팔고 있다. 당신에게는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8. 세 사람의 빅쇼트
마이클 버리. 스티브 아이스만. 그렉 리프먼.
세 사람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은 붕괴한다. 그러나 세 사람의 동기, 방식, 위치가 완전히 달랐다.
버리는 외부에서 봤다. 캘리포니아의 작은 헤지펀드에서 혼자 데이터를 파며 진실을 발견했다. 그의 동기는 지적 확신이었다. 그는 시스템과 무관한 독립적 관찰자였다.
아이스만은 경계에서 봤다. 월스트리트에서 일하지만 시스템에 동조하지 않는 이단아였다. 현장에서 부패를 목격하고 분노로 베팅했다. 그의 동기는 정의감이었다.
리프먼은 내부에서 봤다. 시스템의 한가운데, 도이체방크 트레이딩 플로어에서 매일 이 채권을 거래하며 진실을 발견했다. 그의 동기는 이익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익 추구가 가장 많은 사람에게 진실을 전파했다.
세 사람의 이야기를 나란히 놓으면 한 가지가 보인다. 진실을 발견하는 것과 진실에 행동하는 것은 다르다. 그리고 진실에 행동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완전히 다르다. 데이터로 증명하는 사람, 분노로 싸우는 사람, 돈으로 유통시키는 사람. 세 가지 모두 필요했다. 한 가지만으로는 역사가 바뀌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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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이 일화가 우리에게 남긴 세 가지 교훈
첫째, 진실을 전파하는 것에도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리프먼이 슬라이드 한 장을 들고 헤지펀드를 돌아다닌 이유는 정의감이 아니었다. 헤지펀드가 CDS를 사면 도이체방크가 중간에서 수수료를 벌었고, 리프먼은 그 수익의 일부를 보너스로 받았다. 순수하지 않은 동기였다. 그러나 그 불순한 동기 덕분에 진실이 더 빠르고 넓게 퍼졌다. 이것은 투자뿐 아니라 정보 유통의 본질에 대한 교훈이다. 좋은 분석이 있어도 전파될 인센티브가 없으면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다. 버리의 블로그 글은 소수만 읽었다. 리프먼의 세일즈 피치는 수십 곳의 헤지펀드에 도달했다.
둘째, 시스템 내부에서 보는 사람이 가장 정확하지만, 가장 위험하다.
리프먼은 도이체방크 안에서 매일 서브프라임 채권을 거래했기 때문에, 그 채권의 품질 저하를 가장 먼저, 가장 정확하게 봤다. 외부 관찰자(버리, 아이스만)보다 더 직접적인 데이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위치가 가장 위험했다. 자기 회사의 상품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해고 사유가 될 수 있었다. 내부자가 진실을 말하려면 자기 이익과 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리프먼은 그 균형을 "공매도"라는 형태로 찾았다. 당신이 일하는 회사나 산업에서 구조적 문제를 발견했을 때, 당신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셋째, 세일즈의 힘을 과소평가하지 마라.
투자 세계에서는 "분석"이 가장 중요한 능력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리프먼의 이야기는 "유통"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버리가 CDS를 발명했지만, 리프먼이 CDS 시장을 키웠다. 아이스만이 분노했지만, 리프먼이 아이스만에게 거래 도구를 줬다. 좋은 아이디어는 세상에 전달돼야 가치가 있다. 당신이 좋은 투자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만큼 중요한 질문은 그것을 누구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다.
10. 그 후의 리프먼
2010년, 리프먼은 도이체방크를 떠났다. 리버맥스 캐피털(LibreMax Capital)이라는 자기 헤지펀드를 설립했다. 구조화 금융(structured finance) 전문 펀드였다. 서브프라임 위기에서 그가 쌓은 전문성을 자기 사업에 적용한 것이다.
리버맥스는 2010년대에 꾸준한 성과를 냈다. 구조화 채권 시장에서 가치를 발굴하는 전략이었다. 위기 때 공매도로 돈을 번 사람이, 위기가 끝난 뒤에는 저평가된 채권을 사서 돈을 버는 쪽으로 전환한 것이다. 파괴에서 재건으로.
마이클 루이스의 책에서 리프먼의 캐릭터 이름은 재러드 베넷(Jared Vennett)으로 바뀌었다. 영화에서는 라이언 고슬링(Ryan Gosling)이 연기했다. 고슬링은 리프먼의 에너지, 자신감, 그리고 미묘한 도덕적 모호함을 잘 잡아냈다. 영화에서 베넷은 카메라를 직접 보며 관객에게 말한다. 4번째 벽을 깨는 것이다. 리프먼의 실제 성격과 닮아 있었다.
2015년 영화 개봉 후 리프먼은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고슬링이 나보다 훨씬 잘생겼다는 점을 빼면 꽤 정확했다."
그는 여전히 자기 자신에 대해 유머를 잃지 않았다.
2006년 봄의 어느 날. 도이체방크 트레이딩 플로어에서 한 남자가 프린터 앞에 서 있었다.
슬라이드 한 장이 출력됐다. 차트 하나. 숫자 몇 개. 문장 한 줄.
그는 그 종이를 가방에 넣었다. 재킷을 입었다. 사무실을 나갔다.
그리고 월스트리트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자기 회사가 파는 상품이 폭탄이라고 말하면서.
그 폭탄에 보험을 들라고 권하면서.
그가 도덕적이었는지, 이기적이었는지는 아직도 의견이 나뉜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의 슬라이드 한 장이 없었다면, 빅쇼트에서 돈을 번 사람은 훨씬 적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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