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쇼트의 그날' 모두가 비웃었던 2년, 마이클 버리의 침묵
2005년, 마이클 버리는 미국 주택시장 붕괴에 베팅했다. 월스트리트 전체가 비웃었고, 투자자들은 반란을 일으켰다. 27개월의 손실 끝에 그가 증명한 것.

1. 새벽 두 시, 외눈박이가 본 것
2005년 가을,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의 한 사무실. 새벽 두 시였다. 형광등 하나만 켜져 있고, 책상 위에는 다이어트 코크 캔이 일곱 개 줄지어 있었다. 스피커에서는 메탈리카가 흘러나왔고, 사무실에는 그 혼자였다.
그의 왼쪽 눈은 의안이었다. 두 살 때 망막아세포종으로 잃었다. 평생 사람과 눈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고, 그래서 그는 사람 대신 숫자를 봤다.
이날 그가 보고 있던 건 130쪽짜리 약관이었다. 미국 주택담보대출 채권의 약관. 그 안에 묶인 대출은 수천 건이었고, 누가 얼마를 어떤 금리로 갚기로 했는지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월스트리트의 누구도 이걸 끝까지 읽은 적이 없었다. 신용평가사조차 읽지 않았다. 그들은 요약본만 봤고, 요약본에는 "AAA"라고 적혀 있었다. 미국 국채와 같은 등급, 가장 안전한 자산이라는 뜻이었다.
마이클 버리는 130쪽을 다 읽었다. 그리고 그가 본 것은 단순했다. 갚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갚을 수 없는 돈이 나가고 있었다.
그는 노트북을 덮고 의자에 기댔다. 천장을 한참 봤다. 그리고 결심했다. 미국 금융 시스템 전체를 상대로 베팅하기로. 반대편에서.
2. "그런 상품은 없습니다"
2005년 5월, 버리가 골드만삭스에 전화를 걸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에 대한 신용부도스왑(CDS)을 사고 싶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정적이 길게 흘렀다. "…그런 상품은 없습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주택 가격이 떨어진다는 데 거는 보험을 지금까지 누구도 만든 적이 없었다. 미국 주택값은 대공황 이후로 한 번도 전국 단위로 떨어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보험은 사막에서 우산을 파는 일이었고, 사는 사람도 없을 거라 여겨졌다.
버리는 만들어 달라고 했다. 골드만은 어이없어하면서도 응했다. 도이체방크도, 모건스탠리도 응했다. 그들의 셈법은 단순했다. '이런 데 베팅하는 미친놈이 있다고? 반대편에 서면 공짜 돈이지.'
10월까지 사이언 캐피털은 10억 달러어치 CDS를 쌓았고, 최종 명목 익스포저는 80억 달러까지 갔다. 펀드 운용자산의 13배 규모였다. 대신 버리는 매달 보험료를 내야 했다. 베팅이 맞을 때까지 매달. 문제는 그 매달이 27개월 동안 이어졌다는 것이다.
3. 외눈박이 미친놈
2006년이 됐다. 미국 주택값은 계속 올랐고, 사이언의 평가손실은 계속 쌓였다. 매달 빠져나가는 보험료는 누적 1억 달러를 넘었고, 펀드 수익률은 곤두박질쳤다.
투자자들이 폭발했다. 수십 통의 항의 편지가 도착했다. "당신이 내 노후 자금으로 도박을 하고 있다." 일부는 환매를 요구했고, 사이언이 만약 "1년 록업" 규정을 두지 않았다면 펀드는 그 자리에서 무너졌을 것이다. 소송 위협이 들어왔고 국세청 감사도 들어왔다. 가장 큰 투자자 한 명은 공개적으로 그를 비난했다.
가장 기이한 일은 따로 있었다. 서브프라임 연체율은 분명히 오르고 있었다. 매주 데이터는 그의 편이었는데, CDS 가격은 1달러도 움직이지 않았다. 가격을 매기는 쪽은 은행이었고, 그들은 자기 장부에 손실이 잡히는 것을 미루고 있었다.
버리가 가격 갱신을 요구하면 트레이더들은 핑계를 댔다. 오늘 담당자가 결근했다, 전산에 문제가 있다, 다음 주에 다시 얘기하자. 한 번은 골드만 트레이더가 "그 가격엔 못 판다"고 한 다음 날 같은 가격에 다른 헤지펀드에 거래한 정황이 잡히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의 한 트레이더는 그를 "외눈박이 미친놈(one-eyed crank)"이라고 불렀다.
버리는 사무실 문을 닫았다. 직원들과 말을 섞지 않고 매일 스프레드시트만 업데이트했다. 모기지 연체 데이터, 디폴트 추세, 풀의 만기 구조. 숫자는 분명히 그의 편이었지만, 시장만이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뿐이었다.
2006년 12월. 누적 손실 1억 달러. 투자자 40%가 환매를 요구한다. 매달 보험료는 계속 빠져나간다. 데이터는 분명 당신 편이지만 시장은 2년째 움직이지 않는다. 동료들은 당신을 미친놈이라 부른다. 당신이라면?
4.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2007년 봄, 균열이 시작됐다. 서브프라임 채권 일부가 무너졌고 헤지펀드 두 곳이 파산했다. 베어스턴스가 자사 헤지펀드의 환매를 중단했다.
그리고 7월 어느 날, 도이체방크에서 전화가 왔다. "버리 씨. 2년 전에 저희가 판 CDS 6개요. 다시 사고 싶습니다." 며칠 뒤 골드만이 전화했고, 그다음 주에는 다른 은행들도 줄을 섰다. 시장이 뒤집힌 것이다. 1년 전까지 "그런 상품은 없다"고 했던 은행들이 이제는 "제발 다시 팔아 달라"고 줄을 서기 시작했다.
가격이 폭등했다. 2년간 1달러도 움직이지 않던 포지션이 일주일에 30%씩 평가이익을 냈다. 버리는 일부를 차익실현하고 나머지는 들고 갔다.
2008년 3월, 베어스턴스가 무너졌다. 9월에는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했고, 같은 달 AIG가 구제금융을 받았다. 5년 전부터 그가 데이터로 예측한 일이 정확히 그 모습으로 일어났다.
5. 489.34%
2000년 11월부터 2008년 6월까지, 사이언 캐피털의 누적 수익률은 수수료 차감 후 489.34%였다. 같은 기간 S&P 500은 약 3% 올랐다. 사이언이 시장을 162배 앞섰다는 뜻이다. 서브프라임 베팅 한 건으로 사이언은 투자자들에게 7억 2,500만 달러를 안겨줬고, 버리 개인 몫은 1억 달러였다.
그리고 그는 펀드를 닫았다. 5년의 전쟁이 그를 소진시켰기 때문이다. 투자자 반란, 국세청 감사, 소송 위협, 공개적 조롱. 옳았다는 사실이 증명된 그 순간, 그는 더 이상 남의 돈을 받지 않기로 했다.
2010년 4월, 그는 뉴욕타임스에 글을 한 편 기고했다. 제목은 〈나는 위기를 봤다. 연준은 왜 못 봤는가〉. 본문은 짧고 차가웠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시장을 주의 깊게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위험을 인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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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버리가 우리에게 남긴 세 가지
서브프라임은 미국의 이야기다. 한국 투자자에게 직접 적용할 교훈은 적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버리의 5년이 던지는 질문은 시장과 무관하게 유효하다.
첫째, 분석보다 견딤이 어렵다. 버리의 진짜 자산은 분석력이 아니었다. 견딤이었다. 모두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실 — "역발상 투자가 옳다" — 을 실제로 27개월 동안 손실을 보면서 실행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다. 한국 개인투자자가 ETF 한 종목을 들고 30% 손실을 견디지 못하는 일이 흔하다. 그것도 본인 돈으로. 버리는 남의 돈으로, 매달 욕을 먹으면서 27개월을 버텼다. 우리가 워런 버핏의 말을 외워도 워런 버핏이 못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둘째, "한 번도 무너진 적 없는 자산"이 가장 위험하다. 2005년 미국 주택은 "대공황 이후 전국 단위 하락이 없었던 자산"이었기 때문에 모두가 안전하다고 믿었고, 그래서 무너졌다. 자산의 안전성에 대한 합의가 견고할수록, 그 합의가 깨질 때의 충격은 커진다. 당신의 포트폴리오 안에 "한 번도 무너진 적 없으니 안전하다"고 가정하는 자산이 있다면, 그 가정 자체를 점검해볼 만하다. 안전하다는 합의는 가격에 이미 반영돼 있고, 가격에 반영된 안전은 더 이상 안전이 아니다.
셋째, 신용등급은 진실이 아니라 합의다. 2008년 무너진 채권 상당수가 직전까지 AAA였다. ELS, DLS, 해외 채권에 투자할 때 보는 등급도 같은 한계를 가진다. 등급은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 등급은 그 시점의 합의이고, 합의는 틀릴 수 있다. 신용등급을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다. 등급을 분석의 시작점으로 쓰되, 결론으로 쓰지는 말자는 뜻이다.
7. 캐산드라
2025년 11월, 마이클 버리는 사이언 에셋 매니지먼트를 SEC에 등록 해지했다. 13F 공시 의무에서 벗어났다는 뜻이다. 같은 달 그는 X에 한 줄을 적었다. "On to much better things." 더 나은 일들을 향해.
며칠 뒤 그는 유료 뉴스레터를 시작했다. 이름은 캐산드라 언체인드(Cassandra Unchained), 연 379달러. 첫 호의 주제는 그가 2025년 내내 베팅한 종목들이었다. 엔비디아, 그리고 팔란티어. 그는 이걸 "AI 버블"이라고 불렀다.
그리스 신화의 캐산드라는 미래를 정확히 보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 저주를 받은 예언자다. 버리가 자기 뉴스레터에 그 이름을 붙인 데에는 분명한 의도가 있다. 이번에도 그가 옳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2005년의 그를 비웃었던 사람들이 2008년 어떤 표정이었는지는 기록에 남아 있다.
자료 출처
Michael Lewis, 『The Big Short』 (2010)
Scion Capital LLC, 투자자 서한 (2005~2008)
Burry, M., "I Saw the Crisis Coming. Why Didn't the Fed?", The New York Times (2010-04-03)
SEC Form 13F, Scion Asset Management (분기별, 2025년 11월 해지)
Cassandra Unchained Newsletter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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