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12년: 빅쇼트 이후, 마이클 버리는 어디에 있었나
2008년, 489%의 수익을 들고 사라진 마이클 버리. 12년 동안 그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농지, 물 권리, 금, 게임스탑, 그리고 캐산드라 언체인드까지.

1. 승리한 다음 날
2008년 9월, 리먼 브러더스가 무너진 직후. 마이클 버리는 자기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5년의 전쟁이 끝났다. 그가 옳았다. 모기지 시장은 무너졌고, CDS 포지션은 폭발적인 수익을 냈고, 사이언 캐피털은 미국 헤지펀드 역사에 남는 성과를 기록했다.
투자자들은 이제 그를 다른 시선으로 봤다. 2년 전 그를 "외눈박이 미친놈"이라 불렀던 월스트리트가, 이제는 그의 분석을 듣고 싶어했다. 골드만삭스가 전화했다. 모건스탠리가 전화했다. 자산을 맡기고 싶은 패밀리 오피스들이 줄을 섰다.
그가 그 모든 전화를 거절했다.
2008년 말, 버리는 사이언 캐피털을 공식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투자자들의 자금을 모두 돌려줬다. 그리고 한 가지 공지를 덧붙였다.
"앞으로 외부 자금은 받지 않습니다. 인터뷰도 하지 않습니다."
월스트리트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막 정점에 올랐는데, 왜 사라지는가. 지금이 자산을 폭발적으로 키울 수 있는 순간인데, 왜 멈추는가.
이유를 아는 사람은 그 자신뿐이었다.
2. 5년 동안 그가 잃은 것
겉으로 보면 사이언의 5년은 승리의 기록이었다. 그러나 버리 본인에게 그 5년은 다른 의미였다.
투자자들의 환매 요구. 끊임없는 항의 편지. "당신이 내 노후 자금으로 도박하고 있다." 이런 메시지를 매일 받았다. 그가 옳다는 것을 아무도 인정하지 않았다.
국세청 감사. 그의 펀드 운용 방식이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감사가 들어왔다. 매일 회계 자료를 제출해야 했다.
소송 위협. 일부 투자자는 "당신이 우리를 속였다"며 법적 조치를 검토했다. 변호사 비용이 매달 쌓였다.
언론의 조롱. 일부 매체는 그를 "도박사"라고 불렀다. 가족까지 그 기사를 봤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립. 그는 5년 동안 직원들과 거의 대화하지 않았다. 한쪽 눈이 의안인 그는 평생 사람과 눈을 맞추기 어려워했고, 압박이 쌓일수록 더 사무실에 틀어박혔다. 사이언이 정점에 올랐을 때 그의 주변에는 사람이 없었다.
2008년 어느 날, 그의 아내가 그에게 말했다.
"당신이 옳았다는 게 증명됐어. 그런데 당신은 행복하지 않아."
그게 그가 사이언을 닫은 진짜 이유였다.
3. 첫 번째 침묵 (2009-2013)
사이언 폐쇄 후, 버리는 캘리포니아 새너제이를 떠났다. 그는 가족과 함께 더 조용한 곳으로 이사했다. 정확한 위치는 공개되지 않았다. 일부는 그가 캘리포니아 북부 어느 농장 지역으로 갔다고 했고, 일부는 네바다라고 했다.
그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기록도 거의 없다.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는 자기 돈만 굴렸다. 사이언 시절의 수익으로 그는 이미 1억 달러 이상을 갖고 있었다. 그 돈을 천천히, 조용히 운용했다.
그가 이 시기 무엇에 투자했는가에 대한 단서가 몇 개 있다.
농지(Farmland). 그는 미국 중서부와 캘리포니아의 농지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옥수수, 콩, 알몬드를 재배할 수 있는 땅이었다.
물 권리(Water rights). 미국 서부의 물 사용권을 확보했다. 캘리포니아 가뭄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금(Gold). 인플레이션 대비 자산.
그의 논리는 일관됐다. 2008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돈을 무한정 찍어내고 있었다.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 그는 이게 결국 인플레이션과 자산 거품을 만들 거라고 봤다. 그래서 통화 가치가 떨어져도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실물 자산으로 갔다.
이 시기 그가 한 번 공개적으로 등장한 적이 있다. 2010년 4월, 뉴욕타임스에 글을 한 편 기고했다. 제목은 〈나는 위기를 봤다. 연준은 왜 못 봤는가〉.
본문에서 그는 연방준비제도와 정부 규제당국이 외부의 경고를 무시했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한 줄을 덧붙였다.
"우리는 또 한 번의 위기를 만들고 있다. 이번에는 정부 부채와 양적 완화로."
이 글이 나왔을 때, 월스트리트는 잠시 그를 기억했다가 다시 잊었다. 그는 다시 침묵으로 들어갔다.
4. 빅쇼트의 영화화
2010년, 마이클 루이스(Michael Lewis)가 책을 한 권 출간했다. 제목은 『빅쇼트(The Big Short)』. 2008년 금융위기를 공매도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이 책의 주인공 중 한 명이 마이클 버리였다. 루이스는 버리를 인터뷰하기 위해 그를 찾아냈다. 처음에 버리는 거절했다. 그러나 루이스가 끈질기게 설득했고, 결국 버리는 몇 차례 인터뷰에 응했다.
루이스가 버리에 대해 발견한 것 중 하나가 책에 실렸다. 버리는 아스퍼거 증후군이었다.
이 사실은 버리 자신도 책이 출간될 무렵에야 알았다. 그가 자기 아들이 아스퍼거 진단을 받는 과정에서, 자기에게도 같은 특성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 발견이 그의 인생의 많은 것을 설명했다. 사람과 눈을 맞추기 어려운 것. 한 가지에 극단적으로 집중하는 것. 사회적 관습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 그리고 130쪽짜리 모기지 약관을 끝까지 읽을 수 있는 것.
"제 약점이 제 강점이었습니다." 그가 훗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2015년, 책은 영화로 만들어졌다. 크리스천 베일(Christian Bale)이 마이클 버리를 연기했다. 영화 속 버리는 메탈 음악을 크게 틀고, 맨발로 사무실을 돌아다니고, 데이터에 몰두하는 인물로 그려졌다. 베일은 이 역할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됐다.
영화 개봉 후 버리의 명성은 다시 살아났다. 그러나 그는 영화의 유명세를 이용하지 않았다. 영화 시사회에 참석하지 않았고, 홍보 인터뷰도 거절했다. 영화 제작진은 영화 마지막에 그의 짧은 메시지 한 줄만 받았다.
"한 가지 투자에만 관심이 있다. 물(Water)."
그게 영화에서 그의 마지막 등장이었다.
5. 두 번째 등장 (2013-2019)
2013년, 버리는 새로운 펀드를 열었다. 이름은 사이언 에셋 매니지먼트(Scion Asset Management). 사이언 캐피털과 다른 회사였다. 새 법인이었고, 새 구조였다.
다만 차이가 있었다. 외부 투자자를 거의 받지 않았다. 받더라도 매우 소규모로, 그가 신뢰하는 사람들 한해서. 13F 공시 의무를 충족시키기 위해 SEC에 등록했지만, 실질적으로는 거의 패밀리 오피스에 가까웠다.
이 시기부터 그의 13F 공시가 분기마다 시장에서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 그는 작지만 정확한 베팅을 했다.
2015년: 인도 IT 서비스 기업들 매수. 인도 경제 성장 베팅.
2017년: 일본 소형주 매수. 그는 일본의 인구 구조 변화에서 기회를 봤다.
2019년: 게임스탑(GameStop) 매수. 당시 게임스탑은 망해가는 비디오 게임 소매업체로 평가됐다. 주가는 5달러 안팎. 버리는 회사가 자사주를 매입할 여력이 충분하다고 봤고, 시장이 회사 가치를 너무 낮게 평가했다고 판단했다.
게임스탑 베팅은 훗날 역사가 됐다. 2021년 1월, 레딧(Reddit) 커뮤니티가 게임스탑을 폭등시킨 사건. 주가가 한 달 만에 5달러에서 480달러까지 치솟았다. 버리가 매수한 가격대에서 수십 배 수익이 났다.
그러나 버리는 폭등 직전에 대부분의 포지션을 정리했다. 그는 2021년 1월 트위터에 짧게 적었다.
"이건 자연스럽지 않다. 결국 누군가 다친다."
그의 예측대로, 게임스탑 폭등은 몇 주 만에 반전됐다. 폭등에 뛰어든 일부 개인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입었다.
6. 트위터의 캐산드라
2018년부터 버리는 트위터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계정명 @michaeljburry. 그는 자기 의견을 짧고 직접적으로 올렸다. 인용도 없고, 설명도 거의 없는 암호 같은 메시지들이었다.
"Bubble." (한 단어 트윗)
"Index funds = passive bubble."
"This will end badly."
그의 트윗 하나가 시장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그가 어떤 종목을 언급하면 그 종목 주가가 흔들렸다. 그가 어떤 자산군을 우려하면 그 자산군에 대한 토론이 일어났다.
이 시기 그가 가장 일관되게 경고한 것은 수동 투자(passive investing)의 거품이었다. 인덱스 펀드와 ETF로 자금이 무차별적으로 흘러들어가면서, 개별 기업의 가치 평가가 왜곡되고 있다는 진단이었다.
"인덱스 펀드는 가격에 무관심합니다." 그가 한 번 길게 설명했다. "그들은 어떤 가격이든 자동으로 매수합니다. 이게 시장 전체를 거품으로 밀어 올리고 있습니다. 거품이 터질 때, 그 자금이 동시에 빠져나갈 길이 없습니다. 출구가 좁아진 극장에 너무 많은 사람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 경고는 즉각 현실화되지 않았다. 시장은 2019년, 2020년, 2021년에도 계속 올랐다. 사람들은 다시 그를 잊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2022년, 시장이 무너졌다. 나스닥이 33% 하락했다. 채권 시장도 동시에 무너졌다. 60/40 포트폴리오(주식 60% + 채권 40%)가 사상 최악의 한 해를 기록했다.
버리는 트위터에 한 줄만 적었다.
"I told you so." (내가 말했잖아.)
그리고 그 트윗을 즉시 삭제했다.
7. 그가 12년 동안 진짜로 한 일
2008년부터 2020년까지, 버리는 외부에서 보면 거의 활동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가 그 12년 동안 한 일이 있다.
자산 보존. 그가 사이언 시절 번 돈을 그는 잃지 않았다. 양적 완화가 만든 거품 자산에서 거리를 두고, 실물 자산에 분산했고, 시장이 과열될 때 정기적으로 현금화했다.
가족과의 시간. 그는 두 아이를 키웠다. 첫째는 아스퍼거 진단을 받았고, 그가 직접 양육에 깊이 관여했다. 자기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관찰과 학습. 그는 시장을 매일 봤지만 매일 거래하지는 않았다. 12년 동안 그는 거시 경제, 인구 구조, 자원 시장, 신흥국 경제를 깊이 공부했다. 그가 2020년대에 한 베팅들의 근거는 이 12년간의 공부에서 나왔다.
정체성의 재정의. 사이언 시절의 그는 "외눈박이 미친놈"이었다. 12년 후의 그는 "캐산드라"가 되어 있었다. 그리스 신화의 캐산드라처럼, 미래를 정확히 보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 예언자. 이 정체성을 그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한 가지를 잃지 않은 것. 자신의 분석 방식. 130쪽짜리 약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습관. 시장의 합의를 의심하는 시선. 12년 동안 외부 환경은 모두 바뀌었지만, 그의 사고방식은 동일했다.
2008년 가을. 당신이 마이클 버리다. 5년의 베팅이 끝났고, 489%의 수익이 났다. 월스트리트가 당신에게 자금을 맡기고 싶어 한다. 인터뷰 요청이 쏟아진다. 지금 펀드를 키우면 당신은 향후 10년간 수십억 달러를 벌 수 있다. 그러나 그 5년의 스트레스가 당신을 소진시켰다.
8. 이 일화가 우리에게 남긴 세 가지 교훈
첫째, 정점에서 멈추는 것이 진짜 어려운 결정이다.
대부분의 투자자가 실패하는 이유는 더 이상 못 벌어서가 아니다. 벌었을 때 멈추지 못해서다. 한국 개인투자자들이 가장 자주 하는 실수 중 하나가 큰 수익을 본 직후 그 수익을 더 키우려고 무리한 베팅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베팅에서 벌었던 것을 다 잃는다. 버리는 정점에서 멈췄고, 그래서 그 수익을 평생 지킬 수 있었다. 멈추는 것은 패배가 아니다. 멈추는 것은 이긴 것을 지키는 기술이다.
둘째, 옳다는 것이 행복하다는 뜻은 아니다.
버리가 2008년에 옳았다는 사실이 그를 행복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5년의 고립과 스트레스가 그 수익을 상쇄했다. 투자에서 옳은 판단을 하는 것과, 그 과정에서 잃지 말아야 할 것을 지키는 것은 다른 문제다. 당신이 어떤 종목에 큰 베팅을 하려 한다면, 한 가지를 자문하라. "이 베팅이 맞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내가 잃을 다른 것은 무엇인가?" 가족과의 시간, 잠의 질, 일상의 평온. 이런 것들의 가치를 베팅에 포함시켜 계산해야 한다.
셋째, 사라지는 것도 전략이다.
버리는 12년간 거의 사라졌다. 인터뷰도, 미디어 노출도, 자금 모집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 12년 동안 자기 자산을 지켰고, 자기 분석력을 더 깊게 만들었고, 적절한 순간이 왔을 때 다시 등장할 수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꾸준한 노출"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인플루언서, 매일 콘텐츠, 끊임없는 자기 PR. 그러나 진짜 깊은 생각과 관찰은 노출이 없을 때 가능하다. 때로는 사라지는 것이 가장 강력한 행동이다. 다시 나타날 때, 당신의 한 마디가 무게를 가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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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그리고 2025년
2025년 봄, 버리의 사이언 에셋 매니지먼트가 다시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엔비디아(NVIDIA)와 팔란티어(Palantir)에 대한 풋옵션을 매수했다. 시장이 가장 뜨거운 순간이었다.
월스트리트는 그를 다시 비웃었다. "버리가 또 잘못 짚었다. AI 혁명을 못 보고 있다."
그러나 2025년 11월, 그는 사이언 에셋 매니지먼트를 SEC에서 등록 해지했다. 13F 공시 의무에서 벗어났다. 같은 달 그는 X(트위터)에 한 줄을 적었다.
"On to much better things."
며칠 뒤 유료 뉴스레터 캐산드라 언체인드(Cassandra Unchained)를 시작했다. 연 379달러. 그는 이제 공시도, 기관 형식도 따르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분석한다.
12년 전 사라진 그가, 17년 만에 완전히 자기만의 자리를 만들었다.
2008년 9월의 어느 새벽, 그는 빈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5년의 전쟁이 끝났고, 그의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2025년 11월, 그는 캘리포니아 어딘가의 자택에서 뉴스레터의 첫 호를 쓰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아내와 두 아이가 있었다.
12년 동안 잃었다고 여겨진 시간이.
사실은 그가 진짜로 살기 시작한 시간이었다.
자료 출처
Michael Lewis, 『The Big Short』 (2010)
Burry, M., "I Saw the Crisis Coming. Why Didn't the Fed?", The New York Times (2010-04-03)
SEC Form 13F, Scion Asset Management (2013-2025년 분기별)
Michael Burry @michaeljburry, X (구 Twitter) 게시물 모음 (2018-2025)
Cassandra Unchained Newsletter (2025)
Bloomberg Markets 인터뷰 (2014, 2019)
『The Big Short』 영화 제작진 인터뷰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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