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가스에서 진실을 본 남자
2007년 라스베가스. CDO 매니저가 자기 상품을 모르고, 스트리퍼가 집 5채를 가지고 있던 그날 — 스티브 아이스만이 서브프라임 시장의 붕괴를 확신했다. 마이클 버리가 데이터로 봤다면, 아이스만은 현장에서 봤다. 같은 결론, 정반대의 경로.

라스베가스에서 진실을 본 남자
2007년 1월, 라스베가스. 미국 최대 모기지 업계 컨퍼런스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패널들의 발표를 들으며 점점 얼굴이 붉어졌다. 그가 옆 사람에게 한 말. "이 사람들,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진짜로 모르는 거야." 이것은 스티브 아이스만이 서브프라임 시장의 부패를 현장에서 목격한 날의 기록이다.
1. 월스트리트의 이단아
스티브 아이스만은 1962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부모 모두 금융업 종사자였다. 어머니 릴리안 아이스만은 오펜하이머(Oppenheimer & Co.)의 브로커였다. 월스트리트가 그에게 낯선 세계는 아니었다.
그는 펜실베이니아 대학을 졸업하고 하버드 로스쿨에 들어갔다. 변호사가 됐다. 그런데 법률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가 훗날 한 말. "변호사는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검토하는 직업이다. 나는 직접 하고 싶었다."
어머니의 소개로 오펜하이머에 들어갔다. 금융 분석가(equity analyst)로 전환한 것이다. 1991년의 일이었다.
아이스만은 처음부터 다른 분석가들과 달랐다. 대부분의 월스트리트 분석가는 자기가 담당하는 기업에 대해 호의적 보고서를 쓴다. 기업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정보를 얻을 수 있고, 투자은행 부서의 딜 흐름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을 월스트리트에서는 "매도(Sell) 사이드의 구조적 낙관주의"라고 부른다.
아이스만은 이 구조를 거부했다. 그는 자기가 담당하는 금융 기업들에 대해 부정적 보고서를 썼다. 기업의 회계 관행을 의심했고, 수익의 질(quality of earnings)을 파헤쳤고, 경영진이 투자자에게 말하지 않는 것을 찾아냈다.
1990년대 중반, 그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 기업들을 처음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그의 눈이 열렸다.
2. 첫 번째 경고
1990년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산업은 아직 작았다. 미국 전체 모기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 미만이었다. 그러나 아이스만은 이 시장의 구조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봤다.
서브프라임 대출이란 무엇인가.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에게 주는 주택담보대출이다. 신용이 좋은 사람은 프라임(prime) 대출을 받는다. 신용이 나쁜 사람은 서브프라임(subprime)을 받는다. 금리가 더 높다. 그만큼 대출 기관의 수익도 크다.
문제는 이 대출의 구조에 있었다.
많은 서브프라임 대출이 2/28 구조였다. 처음 2년은 낮은 금리(티저 금리). 3년째부터 금리가 급등한다. 처음 2년은 월 상환금이 낮아서 감당할 수 있지만, 3년째부터는 상환금이 50%~100% 올라간다. 차주가 감당할 수 없게 된다.
대출 기관은 이걸 알고 있었다. 그들의 계산은 이랬다. "3년째에 차주가 감당 못 하면? 그때 다시 리파이낸싱(대환대출)시키면 된다. 리파이낸싱할 때마다 수수료를 받는다." 그리고 이 리파이낸싱이 가능하려면 한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주택 가격이 계속 올라야 한다. 집값이 오르면 담보 가치가 올라가서 리파이낸싱이 가능하다. 집값이 떨어지면? 리파이낸싱이 안 되고 차주는 디폴트를 낸다.
아이스만은 이 구조를 보고 1997년에 보고서를 썼다. 서브프라임 대출 기업들에 대한 부정적 분석이었다. 그가 보고서에 쓴 한 줄.
"이 기업들의 수익 모델은 고객을 영구적 부채의 사이클에 가두는 것이다."
오펜하이머 내부에서 난리가 났다. 그가 담당하는 기업들의 경영진이 항의 전화를 걸어왔다. 동료 분석가들이 그를 비판했다. "아이스만이 또 난리를 피운다."
그러나 1998년, 서브프라임 대출 기업 여러 곳이 실제로 파산했다. 아이스만의 경고가 맞았던 것이다.
문제는 그 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서브프라임 산업은 죽지 않았다. 오히려 더 커졌다. 2000년대 들어 월스트리트의 대형 투자은행들이 서브프라임 시장에 뛰어들었다.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리먼 브러더스, 베어스턴스. 그들은 서브프라임 대출을 묶어 채권(MBS)으로 만들고, 그 채권을 다시 묶어 CDO(부채담보부증권)로 만들었다. 신용평가사들은 이 CDO에 AAA 등급을 줬다.
아이스만은 이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 그의 분노는 매년 커졌다.
3. 아들의 죽음
2003년, 아이스만의 인생에 비극이 찾아왔다.
그의 갓난 아들 맥스(Max)가 태어난 직후 사망했다. 원인은 급성 폐질환이었다. 태어나자마자 병원 집중치료실에 들어갔고, 며칠을 버티지 못했다.
아이스만은 이 비극 이후 사람이 변했다고 주변 사람들은 말했다. 그가 원래 날카로운 사람이었지만, 아들을 잃은 뒤에는 분노가 더 깊어졌다. 그는 세상의 불공정에 대해 더 참지 못하게 됐다.
마이클 루이스는 『빅쇼트』에서 이렇게 썼다. 아이스만의 분노는 단순한 성격이 아니었다. 그것은 상실에서 오는 것이었다. 세상이 불공정하다는 감각이 개인적 비극으로 확인된 후, 그는 금융 시스템의 불공정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2004년, 아이스만은 오펜하이머를 떠나 자기 헤지펀드를 시작했다. 프론트포인트 파트너스(FrontPoint Partners)의 금융 섹터 펀드를 맡았다. 이제 그는 보고서를 쓰는 분석가가 아니라, 자기 확신에 돈을 거는 투자자가 됐다.
4. 라스베가스 컨퍼런스
2007년 1월. 라스베가스.
미국 증권화 포럼(American Securitization Forum)의 연례 컨퍼런스가 열렸다. 미국 모기지 산업의 모든 참여자가 모이는 자리였다. 대출 기관, 투자은행, 신용평가사, 법률회사, 서비서(servicer). 수천 명이 라스베가스의 호텔에 모였다.
아이스만은 이 컨퍼런스에 팀원 두 명과 함께 참석했다. 빈센트 다니엘(Vincent Daniel)과 대니 모지스(Danny Moses). 세 사람은 이미 서브프라임 CDS 포지션을 쌓기 시작한 상태였다. 그들은 이 컨퍼런스에서 자기 분석을 현장에서 검증하려 했다.
그들이 본 것은 예상보다 심했다.
첫째, 패널들이 자기 상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스만이 한 CDO 매니저에게 물었다. "당신의 CDO 안에 들어간 대출의 평균 FICO 점수가 얼마입니까?" 매니저는 대답하지 못했다. 자기가 팔고 있는 상품의 기초 자산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그 상품을 팔고 있었다.
둘째, 그들은 위험을 무시하고 있었다. 한 패널에서 발표자가 말했다. "서브프라임 시장은 건전합니다. 디폴트율이 낮고, 주택 가격이 안정적입니다." 아이스만이 손을 들었다. "2/28 대출의 3년째 금리 리셋이 올해부터 본격화됩니다. 디폴트율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그걸 왜 언급하지 않습니까?" 발표자는 당황했다.
셋째, 스트리퍼가 집을 5채 갖고 있었다. 이것은 마이클 루이스의 책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다. 아이스만의 팀원 대니 모지스가 라스베가스의 한 바에서 스트리퍼와 대화를 했다. 그녀는 집을 5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한 채의 대출 구조를 설명했다. 소득 증명 없이 받은 대출이었다.
모지스가 아이스만에게 돌아와 이 이야기를 전했다. 아이스만은 잠시 침묵한 뒤 말했다.
"그래, 끝났다."
그날 밤, 아이스만은 호텔 방에서 팀과 회의를 했다. 그의 결론은 분명했다. 서브프라임 시장은 붕괴한다. 문제는 언제가 아니라 얼마나 크게.
그리고 그는 결심했다. CDS 포지션을 더 키우기로.
5. 버리와의 차이
아이스만은 마이클 버리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경로가 완전히 달랐다.
버리는 데이터에서 봤다. 새벽 두 시에 혼자 사무실에서 130쪽짜리 모기지 약관을 읽으며 숫자로 증명했다. 그의 방식은 고독하고 체계적이었다.
아이스만은 현장에서 봤다. 라스베가스 컨퍼런스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시스템의 부패를 확인했다. 그의 방식은 감정적이고 직접적이었다.
버리는 시스템이 잘못됐다는 것을 계산했다. 아이스만은 시스템이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느낌은 분노로 표출됐다.
아이스만의 분노는 버리의 고독과 다른 종류의 에너지였다. 버리는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아이스만은 이 시스템을 만든 사람들을 벌하고 싶었다.
그가 한 말 중 가장 유명한 것.
"나는 돈을 벌고 싶은 게 아니다. 이 사기꾼들이 망하는 것을 보고 싶다."
물론 그는 돈도 벌었다. 프론트포인트는 2007-2008년 서브프라임 베팅으로 약 10억 달러의 수익을 냈다.
6. 2008년 9월의 아이스만
2008년 9월 15일. 리먼 브러더스 파산.
아이스만은 그날 자기 사무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리먼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의 베팅이 정확했다는 증명이었다. 프론트포인트의 CDS 포지션이 폭발적 수익을 내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스만은 환호하지 않았다.
그가 그날 팀에게 한 말.
"우리가 맞았다. 그런데 기분이 좋지 않다. 이건 축하할 일이 아니다."
그의 분노는 수익으로 해소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어졌다. 그가 본 것은 시스템의 붕괴였다. 수백만 명이 집을 잃고, 일자리를 잃고, 저축을 잃는 현실이었다. 그리고 그 현실을 만든 사람들 — 대출 기관, 투자은행, 신용평가사 — 은 대부분 처벌받지 않았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에서 대형 금융기관의 경영진 중 감옥에 간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크레디트 스위스의 카림 세라겔딘(Kareem Serageldin). 나머지는 모두 합의금을 내고 빠져나갔다.
아이스만은 이 사실에 분노했다. 그는 2010년 의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월스트리트는 미국인들의 꿈을 상품으로 만들어 팔았습니다. 그리고 그 상품이 폭발했을 때, 그 비용은 미국인들이 세금으로 치렀습니다. 이것은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설계된 것이었습니다."
2007년 1월. 당신이 아이스만이다. 라스베가스 컨퍼런스에서 당신은 서브프라임 시장의 부패를 직접 목격했다. CDO 매니저는 자기 상품을 이해하지 못하고, 스트리퍼가 집 5채를 소유하고 있다. 당신은 이미 CDS 포지션을 가지고 있다. 데이터도, 현장 증거도 당신 편이다.
7. 그가 버리와 만난 적 없는 이유
아이스만과 버리는 같은 시대에, 같은 결론에 도달해, 같은 방향에 베팅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두 사람의 성격이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버리는 사람을 피한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그는 사회적 교류를 극도로 불편해했다. 그는 데이터와 숫자에서 안식을 찾았다.
아이스만은 사람과 충돌한다. 그는 회의실에서 가장 큰 목소리였다. 상대방이 틀렸다고 생각하면 얼굴 앞에서 말했다. 그는 갈등 속에서 에너지를 얻었다.
마이클 루이스는 이 두 사람을 같은 책에 넣으면서 의도적으로 대비시켰다. 버리 챕터는 조용하고 내면적이다. 아이스만 챕터는 시끄럽고 외향적이다. 같은 진실을 본 두 사람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반응한 것이다.
이 대비가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숫자에서 확신을 얻는 사람인가, 현장에서 확신을 얻는 사람인가. 혼자서 버티는 사람인가, 분노로 밀어붙이는 사람인가.
정답은 없다. 둘 다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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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이 일화가 우리에게 남긴 세 가지 교훈
첫째, 숫자 너머의 현장을 봐라.
아이스만은 재무제표만 보지 않았다. 라스베가스에 직접 갔다. CDO 매니저에게 직접 물었다. 바에서 스트리퍼와 대화했다. 이 모든 것이 숫자로는 보이지 않는 진실을 드러냈다. 한국 개인투자자에게도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당신이 투자하는 회사의 제품을 직접 써봤는가. 그 회사의 매장에 가봤는가. 그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을 만나봤는가. 공시 자료와 IR 자료만으로는 진실의 절반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머지 절반은 현장에 있다. 버핏이 게이코 본사 문을 두드린 것과 같은 원칙이다.
둘째, 분노도 투자의 연료가 될 수 있다.
아이스만의 투자 동기는 수익이 아니라 분노였다. 시스템의 부패에 대한 분노, 무고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것에 대한 분노. 이 분노가 그를 2년간의 고독(2006-2008) 속에서 포지션을 유지하게 만든 에너지였다. 투자에서 감정은 보통 적이다. 그러나 감정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탐욕과 공포는 적이다. 분노와 확신은 연료가 될 수 있다. 다만 분노가 분석을 대체하면 안 된다. 아이스만의 분노는 철저한 분석 위에 세워진 것이었다.
셋째, "이 사람들,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가장 강력한 투자 시그널이다.
아이스만이 라스베가스에서 얻은 가장 큰 통찰은 수치가 아니었다. "이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자기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발견이었다. 이것은 2021년 게임스탑에서도 반복됐다. 멜빈 캐피털은 자기 공매도 포지션의 리스크 구조를 이해하지 못했다. 로빈후드는 자기 증거금 구조의 한계를 이해하지 못했다. 당신이 어떤 시장이나 상품을 볼 때,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자기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는 신호가 보인다면, 그것은 가장 강력한 경고등이다.
9. 그 후의 아이스만
2008년 이후, 아이스만은 금융 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비평가 중 한 명이 됐다. 마이클 루이스의 『빅쇼트』가 2010년 출간됐고, 아이스만은 책의 주인공 중 한 명이었다. 2015년 영화에서 그의 캐릭터(이름이 마크 바움(Mark Baum)으로 바뀜)를 스티브 카렐(Steve Carell)이 연기했다. 카렐은 이 역할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됐다.
아이스만은 프론트포인트를 떠난 뒤 에머스 캐피털(Emrys Capital)을 거쳐, 현재는 뉴버거 버먼(Neuberger Berman)에서 포트폴리오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금융 섹터를 분석하고, 여전히 날카로운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힌다.
그리고 여전히 분노한다.
2023년 한 인터뷰에서 그가 말했다.
"2008년 이후 시스템이 바뀌었냐고요? 규제는 강화됐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탐욕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다음 위기는 다른 형태로 올 것입니다. 서브프라임이 아니라 다른 이름으로. 그러나 구조는 같을 것입니다. 누군가 이해하지 못하는 상품을 만들고, 누군가 그 상품에 AAA 등급을 붙이고, 누군가 그 등급을 믿고 돈을 넣는 구조."
그는 잠시 멈추고 덧붙였다.
"그리고 그게 터지면, 비용은 또 일반 시민이 치를 것입니다."
라스베가스의 그 컨퍼런스에서 17년이 지났다. 스트리퍼가 집 5채를 가지고 있던 시대는 끝났다. 그러나 아이스만의 분노는 끝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분노한 것은 서브프라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분노한 것은 무고한 사람이 피해를 입는 구조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구조는 아직 완전히 바뀌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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